[김창완밴드]The happiest
01. Girl Walking
02.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03. 제발 제발
04. 모자와 스파게티
05. Forklift
06. 우두두다다
[EBS]스페이스 공감에 산울림이 나왔다.
이제 산울림은 아니라고 했다. 김창완밴드란다.
우리 삼남매는 성격이 참 많이 달랐다.
오빠는 잘 모르겠지만, 좀 곰살맞았던 것 같고, 잔정이 많았던 것 같고, 예민했던 것도 같고...
난 잘 모르겠지만, 순했던 것 같고, 맹했던 것 같고, 예민했던 것 같고...
동생은 잘 모르겠지만, 씩씩했던 것 같고, 힘이 셌던 것 같고, 고집도 셌던 것 같고, 예민했던 것 같고...
참 많이 다른 삼남매가 공통적으로 좋아한 것이 '산울림'이었다.
매일 아침 기상노래도 산울림이었고, 산울림의 새로운 테입이 나오면 누가 샀는지도 모르게 집에 그것이 있었다.
그것 하나만은 신기하게도 같았다.
올해 초쯤에 산울림의 막내 김창익이 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슬펐다.
김창완이 많이 슬플 것 같아 난 더 슬펐었다.
아침 출근길이었는데, 눈물이 나서 울어야 할 지 참아야 할 지 잠시 괴로웠었던 기억이 있다.
공감에서 김창완이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를 읊조리듯 불렀다.
마치 세상 다 산 사람같은 표정으로,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표정은 슬픈 표정이다.
우리 회사의 일을 아는 분과 함께 하기로 했는데, 일이 순탄치 않았다. 그래서 하기로 한 일을 어찌 풀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중 다른 경로를 통해 그 일을 아시게 되었다. 불같이 화를 냈다.
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내가 어떤 상황인지 잘 알면서 너무 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그 어찌할 바 모르는 순간이 지나자 머리가 맑아졌다.
인간인데... 싶은 생각과 함께, 역시 인간들이구나. 그런데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인간이니까... 마치 안 볼 사람처럼 하는구나.
역시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웃음이 났다.
그리고 결과를 물으시며 걱정하시는 윗분께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인간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거예요." 하고 쓰게 웃어버렸다. 냉소!
그리고 그때부터 좀 멀쩡한 척 다시 일을 했다.
성격탓에 몇 개 되지도 않은 관계가 또 떨어져 나갔다.
김창완이 노래를 부르네.. 하면서 가만히 듣고 있는데 아침에 있었던 이 일이 다시 생각났다.
다시 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가슴이 무거워지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그리고 산울림이, 아니 김창완이 다시 노래를 불렀다.
예순 둘은 예순 둘을 살고 일곱 살은 일곱 살을 살지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일천구백칠십 년 무렵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야
여자들은 여자들을 살고 남자들은 남자들을 살지
어린애는 어린애로 살고 어른들은 어른들로 살지
내가 일흔 살이 되면 이천이십 삼십 년 무렵
그날은 그날 일거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야
미리 알 수 있는 것 하나 없고
후회 없이 살 수 있지도 않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다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게 있지
꿈이 자라나던 내 어린 시절
내 꿈을 따 먹던 청춘 시절
이제 꿈을 접어 접어 날려 보낸다
묻어버린 꿈 위로.....
나비 춤을 추네 꿈이 춤을 추네
나비 날아 가네 꿈이 날아 가네
<모자와 스파게티>라는 노래를 불렀다.
너가 생각나면 모자를 쓴다고 했다.
얼굴을 다 가리는 모자를 쓴다고 했다.
너가 생각나면 너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시킨다고 했다.
싫어하는 스파게티를 시킨다고 했다.
김창완의 목소리가 목을 눌러 나온다.
나는 순대를 생각했다.
지금도 순대를 가끔 먹을 때마다, 누구와 먹던, 어디서 먹던, 난 순대를 먹을 때면 오빠가 생각난다.
대학교 2학년이면서 순대도 먹을 줄 모른다며 내 손을 끌고 포장마차에 가서 그것도 선 채로 순대를 1인분 시켜서 먹어보라고 하던...
그리고 이를 드러내며 재미있다고 웃던 오빠가 생각난다.
밤새 순대 냄새때문에 화장실에서 웩웩거리는 나를 보고 웃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오빠가 생각났다.
토요일에는 아는 후배들과 송년회를 했다.
그 중 남자 후배 한 명이 제 남자동생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가서 놀았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너무 좋았다고... 신이 났다고...
기분이 상했다.
나도 보고 싶었다. 나도 같이 노래방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어디 구석에 앉자 멀리 미국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많이 했다.
어디에 갔는지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더 많이 상했었다. 그런 생각이 절로 났다.
나도 목을 누르는 힘이 주어졌다.
김창완이 목을 꾹꾹 누르며 노래를 하는데, 우리 삼남매가 거실에 놓인 오디오에서 들리던 산울림의 노래를 각자의 방에서 따라 부르던 그 때 그 모습이 자꾸자꾸 생각났다. 목이 자꾸 꾹꾹 눌린다.
모자와 스파게티
네가 그리워서 나는 모자를 썼네
네가 그리워서 모자쓰고 거울앞에 섰네
빨간 방울 달린 털실로 짠 모자
푹 눌러쓰면 얼굴 다 가리는 모자
네가 그리워서 스파게틸 시켜 먹었네
네가 그리워서 소고기 스파게티 시켜 먹었네
네가 좋아하던 그 스파게티
나는 싫어하던 그 스파게티
네가 그리워서 나는 어쩔 줄 몰라
네가 그리우면 그리워 할 수 밖에 없지
네가 짜 준 모잘 써보기고 하고
스파게티를 시켜 먹기도 해
너는 연락도 안 하고 놀러가고
학교도 가고 극장가고
그냥 집에서 쉬기도 하고
누워서 책도 보고
비디오도 보고
그냥 평소에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하는거겠지!!!
그런데 난-----
노래와 노래 사이에 말했다.
"나는 30년을 묻었습니다. 인생도 묻고 노래도 묻고... 다 묻었습니다. 지금 다시 시작합니다."
동생의 죽음때문에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는 정신없는 몇 달이 지나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울다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여행생활자]의 유성용작가가 쓴 [생활여행자].
가끔 나보다 더 엄살쟁이인 [여행생활자]도 만나고, 가끔 나보다 똑똑한 김창완의 컨설팅도 받으며 가는거다.
퇴근무렵 이것저것 무겁던 것이...
이렇게 주절거리다보니 사는 것은 어쩌면 참 간단한 일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숨쉬어라.
그것말고는 무엇도 필요치 않다.
그것이 니가 사는 길이다.
내가 나에게 해 주는 말이다.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먼데 바다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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