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밤 묵호로 출발, 8시 배로 울릉도 도동항 도착
#첫째날 울릉도 도착: 해안산책로- 행남등대 -봉래폭포 (시내버스)
#둘째날 나리분지- 성인봉- 도동항- 독도
#셋째날 태하등대(시내버스)
추석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회사와는 달리 풀근무를 하고 즉시 집으로... 배낭을 챙긴다.
뭘 어찌 할 준비도 않고 그저 가겠다고만 한 상태라 짐을 어떻게 싸야하는지, 그냥 대충 옷가지 몇 벌만 챙겼다.
밤새 묵호항까지 이동을 해야 한다.
비몽사몽 울릉도
아! 멀미!
제주도 6시간 배를 탈 때도, 선유도 들어갈때, 높은 파도때문에 3시간동안이나 배를 탈때도..그리고 몇 년전 울릉도로 가는 배에서도,
난 지옥이 이런 곳이라면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정말 피하고 싶었다.
정말 배멀미는 약도 없다. 그렇지만 내겐 선택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 하나, 온몸으로 배멀미를 견딘다. 죽지는 않는다. 둘, 배멀미약을 먹고 10분이내에 죽어서 세시간이내에 다시 깨어난다.
나의 이번 선택은 후자였다. 몇 시간 동안만 죽자!
묵호항 약국에서 시럽형 멀미약 1, 알약 1를 먹었다.
반응은 무지 빨라 배에 타자말자 머리속에서 내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기절이었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잠이 들었는데, 2시간 30분동안 다리도 팔도 그대로 꼬여있었고, 난 팔다리를 펼수 없었다.
완전 이승에서는 사라진 시간이 되었네.
울릉도에 내려서도 약기운에 취해 내내 틈만 나면 꼬닥꼬닥 졸았다.
울릉도에 도착!
묵호항에서 울릉도를 들어오는 내내 파도가 대단했단다. 난 기절이었으므로 아무 것도 모르지만 남들이 대단한 파도였다고 말해주었다.
배 안이 괴성으로 가득했었다고,
사방에 구토소리로 진동을 했었다고,
그 소리때문에 안하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동참했었다고...기절했던 나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파도때문에 오후 일정에 있었던 독도행 배가 취소되었단다.
도동항을 중심으로 오른쪽 해안길과 왼쪽 해안길을 차례로 걸어보기로 했다.
오른쪽 해안도로에는 횟집 두개가 나란히 트로트로 관광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 곳이었고,
왼쪽 해안도로는 행남등대(공식명칭은 도동등대이다)를 가는 해안길인데,
그 경치가, 바닷물의 색깔이, 파도소리가 최고이다.
울릉도에서 가장 바다를 가까이 낀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곳은 낮도 아름답지만, 밤이면 더욱 아름답고, 혹 달이라도 뜬다면 폭 빠져있는 바닷물에 비치는 달이 또한 장관이다.
행남해안도로에 자칭 울릉도의 압구정이라고 우기는 '용궁'이라는 해산물식당이 있는데, 반대쪽의 트로트와는 달리 7080세대의 음악이 나온다. 김광석 필!!
아무튼 난 이길이 좋아 지난 번 울릉도를 왔을 때는 아마 5번 이상 이 길을 걸었을 것이고,
이번엔 세번 이 길을 걸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가다보면 행남 몽돌해수욕장이 나오고 그 왼쪽 산을 오르면 행남등대가 나온다.
행남등대만 보지 말고 전망대라는 곳을 찾아봐야 한다는...
그곳에 가면 죽도가 보이고 저동항이 보이고... 멀리 아름다운 바다가 참 아름다운 색으로 만날 수 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바람이다.
그 곳의 바람은 모든 것을 날려 버릴 수 있을만큼 시원하게 불어준다.
모자도 자켓도 다 벗어두고 시원하게 바람을 느꼈다. 자유!
그 때 전망대에 함께 있었던 독도수비대? 군인들을 만나 그들의 독도수비대라고 선명히 새겨진 잠바를 한 번 빌려달라고 해서 걸쳐보았다.
기념촬영.... 독도라.......
시내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태하등대는 다음으로 미루고 버스 시간이 맞는 봉래폭포를 가기로 했다.혹자는 거기 뭐 볼 것 없다고 하지만, 꼭 볼 것이 있어야 맛인가.
시간마다 종점이 다른 곳이라 기사아저씨께 말만 잘하면 봉래 폭포에 데려다 줄 수도 있다고 했다.
기사아저씨께 말을 잘했다(?) . 데려다 주시겠단다.
우리를 봉래폭포 입구에 내려다 주시고는 내려오면 전화를 하라고 하신다. 전화를 하고 계속 내려오다보면 오실거란다.
봉래폭포를 오른 길은 마치 산림욕장같았다.
울릉도에 이런 길이? 할 정도로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올라갔고, 폭포전망대 또한 새로 단장을 막 끝낸 것처럼 깨끗하고 이뻤다.
자연의 미보다는 편의성에 더 우선을 둔 듯하지만서요... 아무튼 문화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락가락 하는 보슬비를 맞으면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즐겼다.
내려가자! 전화하자! 천천히 내려오라신다!
길을 따라 내려간다.
기다리는 운전기사 아저씨는 오시지 않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울릉 저동초등학교가 있네.
운동장에서 간만에 그네를 타고, 또 뭣도 하고 또 뭣도 하고...
그곳은 울릉도라서 학교 사택이 학교 만큼이나 많았다. 섬학교 선생님을 하려면 육지에다 가족을 두고 혼자서 살아가야 했으니, 사택이 많을 수 밖애...참 많은 사택들 또한 구경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도동항 숙소로 돌아왔다. 울릉시내버스를 타고...
섬에 밤이 왔다.
모텔에서 차려주는 밥을 먹고 다시 밤바다 산책을 나섰다. 바닷물 빛에 어리는 도동항은 실제의 도동항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나도 바닷물에 비춰보면 좀 달라보일 수 있을까 싶더라.
공황증에 빠진 사람처럼 취사선택이 가능해 바닷물에 비친 나만 나라고 우길 수 있었으면 싶더라.
둘째날 성인봉 등산이 계획되었다.
아.. 난 기억한다. 2년전 성인봉을 등산할 때의 그 끝없는 오르막길을..
산을 오르기도 전에 경사각도 50도 이상은 되어보이는 콘크리트 길을 아마 500미터 쯤 올라가서야 흙길을 밟는 등산이 시작되었던,
그 지겨움, 고른 길의 지겨움, 가파른 길의 지겨움...
가기 싫어. 난 안 갈래!
하지만 동행한 친구들의 강권에 못 이겨
에고.... 난 역시 자의식이 부족해!
그렇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재작년의 성인봉 산행코스와는 반대이다. 나리분지쪽에서 시작하여 도동항으로 하산을 한다.
지루한 그 길이 내리막이라면 괜찮겠지.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도동항에서 버스로 나리분지까지 이동을 해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나리분지! 꼭 봐야 할 것이 있다.
보라색 갈대 서식지. 하늘과 닿아 보랏빛을 내던 갈대숲 앞에 다시 서 보는 것이 이번 울릉도 행의 또하나 이유였었다.
급한 맘으로 나리분지에 도착해서 토막집에 뒤로 갈대숲을 찾았으나, 그때와는 달리 먼 곳에서 밖에 볼 수 없었다.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두었다. 멀리서 바라보았다. 계절이 좀 빠른 탓인지 보랏빛이 좀 바래보였다. 멀리서 보기만 했다.
성인봉을 오르는 길.
선진화? 라고 해야하나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경사가 가파르고 산에서 흐르는 물때문에 등산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기는 했다.
그래서 비방으로 내어놓은 것이 계단이란다.
2년사이에 계단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계단의 수가 1150여개란다, 헉!!!!!
가도 가도 끝없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종아리에 돌덩어리를 차고 오르는 느낌이다. 헉!!!!!!!!!
말도 안돼.
63빌딩을 오르는 것과 뭐가 달라.
공기가 다를거야.
공기청정기 달아놓은 63빌딩과 뭐가 달라.
숲냄새가 다를거야.
아로마테라피 청정기를 달아놓은 63빌딩과 뭐가 달라.
너무 힘이 들어 혼자서 이상한 생각해가면서 1150계단을 다오르니, 성인봉이 코앞이다.
구름이 내 몸을 감아도는 느낌,
눈앞에서 구름이 사라졌다 바다와 나리분지가 선명히 보인다.
눈앞에서 구름이 다가왔다 바다도 나리분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을 손가락 사이로 헤치는 기분, 이게 구름이야?
하산길.... 내려가자 내려가자 내려가면 세상이 나온다.
죽이는 콘크리트길을 만날 즈음에는 언제나오는 거야? 그 길만 나오면 곧 마을일텐데...
죽어라고 걸으니 그 길이 나왔다.
오를 때 콘크리트 길은 에너지가 무지하게 필요했던 기억인데, 내리막길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밀려 내려가려는 다리를 붙들어야한다.
난 온 몸을 돌돌말아서 구르고 싶더라.
한 번 시늉도 해보았다. 발목을 두 손으로 붙들고 머리를 다리 사이로 넣고 뒷꿈치만 떼면 돌돌 굴러갈텐데..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무튼 내려왔다.
같이 간 선배언니가 하는 말, "담에 울릉도는 와도 성인봉은 안 오를거야! "
내가 쬐려보면서 말했지. "나도 그러고 싶었던 건데!!!"
그 언니 "아, 담에 한번 만 더 올라갈께, 그때 넌 가지마."
흔들리는 다리를 붙들고 홍합밥을 찾아, 식당을 찾아, 어디로 가야 맛난 집이지.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홍합밥 어느 집이 제일 맛있어요?"
그 아주머니 "저기 보배식당이 있는데, 그 집 텔레비젼에도 나왔어요."
보배식당을 찾아 들어간 골목길이 참 이쁘다.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는 길은 상가뿐이지만 보배식당이 있다는 그 골목은 울릉도의 과천이었다. 경찰서 군청... 모두 모여있는 곳.
홍합밥 전문 '보배식당' 간판을 발견했으나 휴업!
어디로 갈까? 식당이 즐비한 골목으로 다시 나와 간판을 살핀다.
발견!!! 방송 3사 에 방송된 집이라고 간판이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99식당!
거품이라한들 상관없다며 들어간 식당. 복잡하다. 사람이 많다.
좋군.
홍합밥과 따개비밥을 시켰다.
홍합밥보다는 따개비밥이라는 것이 더 짙은 바다향이 스며있었다. 같이 나오는 반찬도 일품이었다. 최고다 최고다 맛있었다.
명이라는 울릉도나물지에다 따개비밥을 쌈싸먹는 밥이 환상에 가까웠다는...
행복한 기분을 잠시, 난 다시 잠에 취해야만 한다.
독도로 가기 위해서는 멀미약을 또 먹어야 한다.
파도가 심하지 않아 행운이 따른다면 독도에 내릴 수도 있다는데.... 부푼 마음도 잠시 난 약에 취해 또 잠이 들었다.
옆에서 깨운다. 독도라고...
멍하게 눈을 뜨니, 배 창너머로 검은 색 제복을 입은 우리의 국군들이 도열해있고, 독도의 상징인 삽살개가 왔다갔다 한다.
사람들이 술렁인다.
금강산보다도 가기 힘든 독도라니...
우와 독도!
그곳은 생각보다 컸다.
작은 현무암섬들이 다닥 다닥 붙어있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쉽게도 선착장 부근만 허용되었지만,
사방으로 보이는 바다, 검고 아름다운 섬들, 그 위에서 살고 있는 군인들... 모두가 처연한 아름다운으로 느껴졌다.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서 인내라는 말이 어줍잖게 떠오른다.
격리된 곳, 세상이라는 곳에서 한번도 공통이라는 것으로 묶여진 적이 없을 것이다.
언제나 그 곳으로만 불리웠을 진정한 섬이라는 느낌.
그 곳을 지키는 20대 초반의 16명 독도수비대들 그들은 그 곳에서의 삶을 뭐라고 말할까?
배가 며칠 만에 정박을 했다고 하는데,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뭔지 모를 흥분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것은 아마 20분이라는 시간때문이었을 것이다.
들려오는 누구의 말처럼 죽을 때까지 다시 못 와 볼 곳이 뻔한 곳이기에...
그때까지도 약에 취해서 멍했던 나는 몇 번이나 정신을 차려볼라고 머리를 흔들었었다.
그렇지만 알겠다.
그 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이 육지 어디에서 날아왔다는 것을...
누군가의 힘으로 이 멀리까지 던져졌다는 것을...
그 때 정해진 운명으로 지금까지도 떨어져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힘이 크면 클수록 한 번 정해진 자리는 바꾸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잠시...
나를 조종하는 누군가가 대단한 힘을 가진 자가 아니라 이랬다 저랬다 맘을 잘 바꾸는 그런 작은 소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잊던가? 자신이 가졌던 나의 생각을 바꾸던가? 아니면 그가 맥없이 누군가에게 제 자리를 빼았기던가...
다시 배에 타고 울릉도로 돌아온다.
취해있던 약에 다시 취해 또 잠이 들었다. 깨운다.
해가 너무 이쁘게 지고 있다면서... 뱃머리쪽으로 가자고 한다.
잠에서 덜 깬 내가 몸을 일으키고 몇 걸음을 움직였는데, 그때 배가 휙 하고 흔들린다. 난 날았다.
카페트 위를 붕 날아 무릎으로 착지....아 아프다. 무릎을 보니 카페트위에서 넘어졌는데, 바지에 구멍이 나고, 무릎은 깨졌다.
옆에서 선배언니가 웃고 난리다.
카페트에서 넘어져서 무릎에 피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면서, 바지에 구멍나는 사람 처음 본다면서...
그러니까 그냥 잔다고 했잖아.... 씩씩 거렸다.
배에서 내리자 독도에 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축하한단다. 축하한다다. 마치 난 매우 행운아가 된 것 같더라.
흥분되었다.
멀미약에서 깨어나자 기분이 좋았다. 나 독도도 갔다왔다! 뒷북을 쿵따리 쿵딱 하고 쳤다.
생각하면 할수록... 꿈같다. 난 정말 꿈결이긴 했지만.
세번째 날.
오후 3시 배로 묵호로 나간다.
오전? 태하등대를 가기로 한다. 울릉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 도동항에서 출발하고 태하등대를 갈 수 있는 버스 시간을 물어봤다.
9시20분 버스를 타고, 태하에서 11시 55분 버스로 나오면 된다고 했다. 버스는 2시간만에 한 대씩이라고 했다.
낯선 곳에서 시내버스 타기는 참 멋진 경험이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태하행 버스에는 울릉도 주민도 많았지만, 여행을 온 사람 또한 많았다. 작은 버스가 꽉 찼다.
태하등대.
좁은 골목길 사이로 태하등대로 가는 옛길을 쫓아간다. 덥다. 후덥찌근한 날씨에 제법 가파른 산이다.
전날 성인봉 등반때 빡빡해진 다리로 그 곳을 오르자니 종아리에 돌덩이 한 개씩을 차고 오른 기분이다. 내 다리 정말 무거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다리 아픔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들의 아름다움, 손으로 만져지는 것의 설레임, 몸으로 느껴지는 바람의 간들거림이 우선한다.
태하등대로 오른 길에 길가에 도열한 듯 잎을 펴고 있는 야생의 '아이비'들
'아이비'가 외래종 식물이 아닌 우리의 자생종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비들이 동백숲과 어울려 이루는 초록.. 좋더라 이쁘더라, 더구나 나뭇가지 사이로 꽃히고 있는 햇살 받은 잎들의 아름다움이란?
인간,
화장하고 고치고 옷을 입고 갈아입고... 무색하게 만든다.
태하등대로 오르니, 정갈하게 꾸며진 작은 등대관리사무소가 나온다.
근무하시는 분이 우리들의 말소리를 듣고 나오셔서 등대 오른 쪽으로 더 가면 멋진 풍경이 있으니 그리고 가라신다.
진실, 세상에는 변하지 않은 진실 중의 하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는 진실, 보는 눈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때 누가 보아도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이런 것도 진실이지.
사람들의 진실이 바다와 나무와 바람이 보여주는 진실이라면 .... 사는 것이 팍팍하지 않겠다 싶더라.
바다는 푸르고 바위는 깎아지는 듯 솟아오르고,
소나무 동백나무 그리고 갈대는 모두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한묶음으로 같아보인다.
낄 수 없을까? 요지부동 함께 저 자리를 지킬 수 없을까?
태하등대를 오른 길 만났던 누리장나무의 전설처럼 죽어서 나무로 태어난다면 이 곳의 나무로 태어나 죽어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한자리의 주인으로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모든 것들로부터 다른 이름으로 불리울 필요가 없겠지.
너무 많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지금,
지금도 이름을 생산해내고 있는 그런 짓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듯,
그리고 죽어도 변하지 않고 옆에서 함께 하는 바위를 벗삼고, 바다를 벗삼고 바람을 벗삼고 살 수 있겠지. 혼자라는 생각은 않겠지.
소원 하나가 생긴 곳, 태하등대.
마지막 피날레를 결국은 해내고 말았다.
내려오는 길, 갈림길에 놓여있는 작은 표지를 본 것이 화근이다.
'바다로 내려가는 길->
마을로 내려가는 길<-'
올라올 때는 마을로 왔으니 내려갈때는 바다로 가자. 그랬다.
오 그런데 바다로 가는 길에 나뭇가지가 가로로 걸려 있었다.
우리는 의논이라는 것을 했다. 이 나뭇가지가 막아놓은 의미일까? 아니면 나뭇가지가 여기에 그저 떨어진 것일까?
우리들의 선택, 그냥 떨어진 것일거야? 아니 막아놓은 것이라고 해도 그건 아래에서 새로운 길을 뚫고 있어서 그렇게 해 둔 걸거야?
하면서 바다로 향하는 길을 택하고 산을 내려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없다.
몇 년동안 사람이라고는 다니지 않았는지 몇 년이나 쌓였음직한 솔잎들이 마치 덤블링하는 스프링매트처럼 푹신푹신하다.
우와 최고야... 솔잎이 이렇게 푹신할 줄이야... 신났다고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니 멀리서 바다가 보인다.
것도 무지하게 멋진 바다다.
거대한 바위절벽 아래고 파도치는 바다!
다리가 보인다. 저 다리를 건너서 바위절벽을 돌아서 마을로 가면 되겠다 싶어 다리로 향하는데...
"아!!!!!, 다리가 끊어졌어. 길이 없어!"
100미터는 되어보이는 철다리가 끊어져 있다. 아마 매미태풍때 끊어진 다리일 것이다.
11시 55분 버스를 타야 오후 배를 탈 수 있는데.... 지금 시간은 11시 30분,
저 바위를 타고 마을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럼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 등대아래에서 부터 다시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55분이면 불가능이다. 아까 이야기하던 중 천부항으로 가는 버스가 12시 5분이라 했다. 그럼 10분의 여유가 더 있는 것이다. 올라가자!
푹신했던 솔잎길을 걸어 올라간다는 것,
어제의 산행으로 무거워진 다리를 끌고 산을 오른다는 것, 그것도 뛰어올라가야 한다는....
악 죽겠다는 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올라간다.
정신도 없이 그저 차를 타야지 하는 생각만으로 정신이 없다. 다리가 없으면 더 빠를 듯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종아리가 무겁게 당긴다.
옷은 땀에 젖어 아래로 쳐지고, 얼굴이고 몸이고 땀이 뚝뚝 흐른다.
미치지 않고서야....
갈림길까지 오니 42분, 미치지 않고서야 12분만에 그 산을 오르다니...
이제 내리막이니까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
뛰었다. 가파른 돌계단 내리막길을 풀린 다리로 뛰는 것은 무지하게 위험한 일이다. 다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주의를 기울려 내려왔다.
마을이 보인다. 다 와간다. 갈 수도 있겠다.
뛰고 또 뛰고 뛰어서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55분이고 버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땀을 닦을 사이도 없이 버스에 올랐다.
얼굴이 불덩이다.
땀은 내내 식지 않고 빨개진 얼굴은 쉬 식지 않았다.
하지만 무지 기쁘더라. 뭔가 해냈다는 기분으로 충만했다. 버스에 오르고서야 생각했다.
우리가 잘못 간 그 길에서 본 거대한 바위절벽과 끊어진 다리, 그 아래 깊은 곳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시퍼런 바다...
이것을 비경이라고 하는 것이지 싶더라.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이번 울릉도의 BEST 3 (독도, 태하등대 아래 절벽길, 따개비밥)를 결정했다.
배낭을 다시 꾸리고 육지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멀미약을 다시 먹었다.
좀 일찍 먹은 탓일까?
아직 배를 타지도 않았는데 몽롱한 것이 졸린다.
배를 타고 배가 항구를 떠나기도 전에 난 잠들었다. 그래서 울릉도에세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다.
내내 잤다. 일어나니, 묵호항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깊은 밤이다.
휘황한 서울의 빌딩 속에 서 있는 나를 확인하고서야 멀미약에 취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이 마치 꿈인듯이 몽롱하다. 3일 내내 멀미약을 먹고 있었으니.. 이 또한 기록이다.
떠나고 싶었었다.
사실 떠나기 전까지 계속 망설였다.
추석이라는 명절에 가족을 포기하고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맘을 누를 수 없었다.
양심에 찔리면서도 난 떠나고 싶었다.
생활이 아닌 곳에다 날 내려다 놓고 그저 생활과 잠시 떼어놓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배낭을 풀었다.
배낭 안에서 울릉도 호박엿 한 봉지가 나왔다. 울릉도 호박엿 2000원짜리 한 봉지가 울릉도를 다녀왔다는 증거품이다.
비몽사몽은 분명한데... 기억도 분명한데... 사실은 아닌 것은 이 묘한 기분!
이도 괜찮은 걸....
이도 괜찮은 걸....
아주 행복해하는 모습이 있어. '나'이면서 내가 목표로 해야 할 '나'를 그 곳에서 발견했다.
저 웃는 모습을 닮아야지!!!
여행이 내게 준 선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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