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965-1991)를 추억함
김중식
바보
굵고 딱딱한 팔뚝/ 팔씨름에서 진 적 없고
깊고 딴딴한 말뜻/ 말씨름에서 진 적 없으나
그의 애인- 그녀에게는/ 이긴 적 없는 바보
집념
사랑합니다/ 고백하기 전부터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아름답군요/ 감탄하기 전부터 그녀는 아름다웠으며
매우 잘/ 알고 있었음을
이름
1학년 2학기 그녀의 이름은 유진희
2학년 2학기 불문과 여학생 회장 유진희
3학년 2학기 인문대 여학생 회장 유진희
4학년 1학기 제적된 뒤 주민등록증 이름 최경렬
잔재
-넌 갈수록 어눌해지는구나
그런데 네 어눌엔 힘이 있어
-난 단순해져야만 해
그동안 난 너무 복잡했으니까
-강한 것은 단순하겠지?
-내일부터 공장에 들어가
-그런데 왜 그렇게 힘이 없니?
-이력서 내러 갔었는데
날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
-아니야, 넌 이뻐
시인
국문과에 입학하기 전부터 그는 박사였다
시에 관한 한 철학이 있었으니 말이다
뭉클해야 할 뭉클
시인은 신 없는 광신자야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들고 다니는 시집을 보며는 알수 있는데
어느 날
빼앗긴 들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최후 진술을 할 때는 모든 시집을 태운 뒤였다
시는 과학의 좀벌레야
시인은 혁명을 배반해
정말이지 그는 시에 관한 한
박사였다
파혼
사상이 틀리면 연애할 수 없습니다
연애도 사상 의지입니다
낙관적인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식민지 치하에서
바관적인 사상은 비극입니다
동지 둘이 증인이 되어 약혼을 한 뒤
경춘선을 타고 약혼여행
이박 삼일 후 그는 입대했고
두번째 휴가를 나와서 귀대 날짜를 어겼다
운동을 포기했습니다- 그녀의 말
그는 매일 편지를 썼다-사상은 삶의 일부입니다
아니 그런 거 필요없어 널 사랑한단 말이야
그 후
그는 물 위를 걷고 싶어했다
매일 아침 냇가에 나가 연습했다
넉 달 후
그는 물 위를 걷고 있었다
때는 겨울, 얼음 위를 걷고 있었다
또한 그는 사물을 응시했다
나중엔 태앙을 쏘아보았다
두시간의 눈싸움 끝에
태양이 서편으로 숨어버렸다
그는 이겼다
때는 겨울, 그의 눈이 멀어버린 것이었다
유언
의지를 가진 자 홀로 불행하므로
내려올 산, 아예 오르지 않는다.
추억이라는 것은 강물과 같아서 항상 같은 곳에 있는 나를 지나가는 물들의 이야기들이다.
나를 흘러지나가는 물들의 이야기라는 것이지.
항상 같은 모양으로 생긴 운명이라는 것이지.
나를 지나가는 추억들은 운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나의 운명들은 그 모습이 거의 비슷해 누가 언제 지나갔는지 조차 모를 때가 있고,
나의 운명은 항상 같은 냄새를 풍기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나를 훑고 지나가는 것들은 모두 달라었지.
운명이란 시시때때마다 항상 다른 모습으로 나를 긁으며 흘러간 것이지.
지금쯤 봤더니 저 아래 지방의 몽돌같은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킬만큼 말이지.
'물'이라고 말해 버리면 끝장이 나는 운명 혹은 추억.
같은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같은 말처럼 들린다.
삶이라는 것은,
살아간다고 느끼는 것은
추억이라는 구슬을 꿰어 운명을 목에 거는 ... 운명이 나와 어울리나요 하고 물어보기도 하는 그런 것.
이음새 곱게 이어서 그저 목에 걸고 살아도 무겁다고 느껴지지 않는
평생을 걸고 살아도 뭔가 하나 걸고는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추억이라는 구슬로 꿰어진 운명.
시인은 시간을 거슬러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는데...
내가 이 시 한 편을 읽고나자 시인이 문득 내 앞에 서서 묻는 듯 했다.
"어울리나요?"
"네 당신의 얼굴을 본 적이 없으나 어울리네요. 잃지 말고 잘 간직하시길요."
그렇다면 나도 한번 엮어볼까... 그리고 물어볼까...
"나도 어울리나요?"
추억 [追憶]
[명사]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 ≒추상(追想).
운명 [運命]
[명사]
1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명(命)·명운(命運).
2 앞으로의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 ≒명·명운.
---by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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