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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인도철학] 프라나 prana

by 발비(發飛) 2007. 7. 18.
프라나[prana]
 

산스크리트로 '숨'이라는 뜻

인도철학에서 신체 활력의 '기'(氣)를 가리키는 말.

초기 힌두교 철학, 특히 우파니샤드에서는 핵심 개념으로서, 생명의 근원이며 영원히 또는 내세까지 지속되는 '마지막 숨'으로 생각했다.
시대에 따라 프라나는 자아(自我)와 동일시되었으며,
숨을 쉬거나 음식을 몸 안에서 소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는 '5가지 프라나'의 첫번째 것이기도 하다.
요가철학에서는 수행자가 호흡의 흐트러짐 없이 명상을 할 수 있게 하며
산만함에 대해 치료효과를 거두도록 하기 위해 조식(調息)을 실천함으로써 프라나의 완전한 조절에 이를 것을 강조한다.
-by 다음백과사전
 
 

(......)

 

 

인간이 무엇이나 주의를 보내는 것은 그 인상이 의식 속에 받아들여져서 인상이 되고 뒤에 이르러 그것이 행동이 되어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에-텔에 일심집중하면 그 성분이 자기의 존재 중에 흡입되어 그것의 성질에 따라 자기의 생명이 더 많이 도 생생하게 표현되게 되는 것이다.  

-by 프라나 호흡법 중에서

 

내게 있어 새로운 단어 '프라나(prana) '

처음 들었으나 그 의미가 학교 때 배운 성리학의 이기철학의 어느 모퉁이와 닮아 연결된 기억의 고리들이 꿰어지는 느낌이다.

이기철학적이라고 봐야하나..

우주나 인간이나 그것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서의 행동책인 기(氣).

기를 움직이게 하는 원리 혹은 작용이치의 조종자인 이(理).

성리학은 이 둘 중에 이(理)의 역할을 더 크게 보는 철학쟝르이다.

조선시대의 관념적학들은 그 원리를 집중하여 연구하는 바로 이(理)를 중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반면 기(氣)의 의미를 중시하는 이기론자들은 이이론자들보다는 좀 더 실용적인 학문을 한 셈이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오늘 우연히 '프라나'라는 새로운 단어를 접하면서 기(氣)를 생각했다.

내 안에 정제되어 온전히 나인, 결정체인 나를 정의 내린 말이 '프라나'이다.

내가 이 말에 꽂힌 것은 나에게 프라나가 있냐는 의문이 .....

프라나라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나라는 사람이 세상의 어떤 것과 섞여도 나라는 프라나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변하지 않는 프라나가 영원히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잠시 사로잡혔다.

 

---- 지금은 교정 중, 프라나의 말에 꽂혀  잠시라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 단어를 잊을 것 같아.

----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단어 같아.

---- 잠시 시간 할애.

---- 오늘 밤 내게 이 프라나에 대해 주절거릴 수 있는 힘이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지금은 새로운 날 01:09분

숨을 쉬었다.

숨을 쉬는 한 내게 숨이 남아있음을...

숨을 프라나라고 했나?

숨은 내 쉰다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들이 쉰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숨은 들고 나지만, 숨은 내게서 떠나지 않은 것이다.

숨이 끊어지기 전엔 말이지.(인도에서는 숨이 끊어지더라도 다른 육으로 다시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서도...)

그런데 숨을 내쉬고 들이쉬면서 나를 잃었네 찾았네 하는 것이 뭐지?

 

정작 그 숨안에 숨어있는 나의 정제된 정.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내게는 정제된 정이 있으니 그것은 티끌보다 작을 수 있으나 절대 없어지지 않는 나의 실체인 것이다.

내가 어디에 놓여지든 무슨 일을 하든 정은 나로서 살아가는 기본이 되는 것인데...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나일 수있는 이유는 오직 이 정때문이다.

간혹 사람들은 말을 하지.

넌 오뚜기 같아!

그것은 순전히 나의 정때문이다.

나의 정은 내가 생각하기에 좀 쓸만한 것 같다.

난 간혹 진흙탕에 몸을 담그기도 했고, 오물덩이에서 뒹굴기도 했고, 간혹 달디단 사탕통에 혀를 묻기도 했다.

그런데도 내가 진흙이 되지 않고 오물로 버려지지 않고 달기는 하지만 사탕으로 명을 다하지도 않은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나의 정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프라나'라는 것이지.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기뻤다.

지킬 것이 생기고 믿을 것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혹 지금이 힘들다고 나를 포기할까 싶다가도,

이대로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하수인 혹은 복제품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그것들을

모두 씻어내주었다.

답은 나의 프라나-정을 믿는 것이다.

학교때 내가 너무 좋아하던 성리학의 이기론은 나의 자존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함때문에 좋아했던 놀이에 가까웠다.

프라나를 듣는 순간, 그 때 내가 이와 기에따라 순리대로 움직이는

내가 그 안에서 맘껏 회전하고 돌아도 언제나 나를 움직이는 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

이가 운용하는 데 따라 기가 움직여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그래서 살만했던 날들...

난 다시 삶의 화두 하나를 얻었다.

 

프라나.

 

내가 굳이 지키지 않더라도 인식하지 않더라도 항상 내 안에서 들락거리며 나이면서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기도 한 프라나.

 

누구에게나 프라나가 있다는 사실....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이즈음, 난 내 주위에 숨이라는 기운으로 움직이고 있는 프라나를 인식한다.

누구라서 누구를 바꿀 수 있겠는가... 모두 다 프라나를 갖고 있는데 말이다.

믿자!!!!!! 프라나! 멋진 말이다!!!! 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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