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그물에 갇힌 폐가
이은림
수많은 상처가 흉터로 가득한 집
몇 개의 뼈와 근육이 망가졌으며
한때, 신나게 부풀었던 몸도
형편없이 야위고 말았다네
잘 손질된 짐승의 털처럼 윤기나는
담쟁이들이 몰려오지 않았다면
그 집은 벌써 주저앉고 말았을 거네
재치 넘치는 담쟁이, 신음 소리 쫓아가선
아픈 곳 핥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뜨거운 태양볕도 가려준다네
빗줄기와 바람의 장단에 맞춰
한바탕 굿판을 벌여줄 때도 있다네
담쟁이의 따스한 손길 속에
편히 쉬면서 언제 상처가 있었던가
깜박깜박 잊어가는 그 집,
크고 푸른 손바닥들이
사라지는 겨울이면 알 수 있을까
낡고 병든 몸 감싸주던 온기가 어느 순간
질기디질긴 밧줄로 변해 있으리라는 것
이제는 혼자서 눈조차 감을 줄 모르는
그 집,
붉은 혓바닥 감춘 채 더듬더듬 기어오르는
담쟁이들의 발소리로 가득한
어릴 적 우리 동네 맨 앞 집은 담쟁이 덩쿨이 온 집을 싸고 있었던 서양선교사의 집이었다.
교회만큼이나 멋있던 집.
미국영화에 나왔던 집과 똑같이 생겼던 그 집은 봄에서 여름까지는 온통 푸르렀었다.
그리고 늦가을부터 겨울에는 온통 붉었었다.
푸른 집도 꿈이었고 붉은 집도 꿈이었다.
그 집 주인인 선교사가 집을 비운 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그 집 안으로 들어갔었는지.
그 집의 가정부였던 아줌마가 기억이 난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그 때 분명 우리였다고 말할 누군가가 옆에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였는지 그것도 알 수 없군. 분명 우리였다)에게 집 구경을 시켜주었다.
가스오븐렌지를 처음 보았다.
하얀 침대시트를 처음 보았다.
방벽의 반이나 되는 높이의 침대헤드도 처음보았다.
등이 높은 일인용 소파도 처음 보았다.
벽난로도 처음 보았다.
.
.
여기 저기 흩어져있던 잠옷과 가운들 사이 사이를 가려디디며 일하는 아주머니를 따라 구경하던 선교사의 집,
그 집을 나오면 뒤돌아보았을 때 일요일이면 더욱 밝던 햇빛에 비춰 별처럼 반짝거리던 초록담쟁이.
나에게 그 집은 나의 기준점 같은 것이었다.
너의 집이 어디니? 하고 물으면
경안선교관사 뒤에 뒷집요! 하고 대답했었다.
난 의지없이 자라버렸다.(정말 의지없이 자라버렸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의지없이 자라는 동안, 담쟁이 덩쿨집도 의지를 상실해갔다.(정말 의지를 상실해갔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제풀에 허물어지는 느낌이었으니까... 마치 삭아내리듯)
그 때쯤 나는 선거라는 것을 할 때쯤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난 타자가 공인하는 어른이 되었던 거지.
타자가 나에게 이제쯤은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을거라고 믿어주는 나이가 되었을 때(이 말이 왜 길지?)
그 선교사의 관사는 유치원이 되었다.
그 날은 집이 낯설어 보일만큼 오랜만에 집에 간 날이었다.
마당에는 보도블럭이 깔려있었고, 발을 디디는 곳마다 1.2.3.4.5..... 그렇게 순서대로 밟으면 관사의 현관까지 갈 수 있었다.
마당을 몰래 들어갈 필요도 없이 마당으로 들어갔다.
담쟁이가 빨갛게 물든 계절이었는데,
하늘에 해는 여전히 반짝였지만, 담쟁이는 빛을 반사시키지는 못했다.
유치원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조심조심 발을 골라디디던 내 그때쯤의 기억때문에
쉿! 쉿!
나도 모르게 입술에 손을 대어 싸인을 보내려 한다.
유치원 아이들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이나 생뚱맞게 들어온 이방인인 나를 물끄러미 구경했었다.
난 그때로서는 주인인 그들이 이방인 같았다.
뒤돌아나오는 데 여전히 일요일이라 더욱 밝았던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붉은 담쟁이는 무심히 담쟁이일 뿐이었다. 아이들로 가득했지만 텅 빈 나무 속 같았었다.
그 때 이후로 난 택시를 타더라도 경안선교관사요! 하고 말할 수 없었다.
오른 쪽 길루요. 그리고 왼쪽 그리고 ..... 이렇게 말해야 했었다.
그 후, 내가 살던 집은 이사를 했고 선교사의 집쪽으로 갈 일은 없었다.
지금 그 관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언젠가는 나에게 우리집의 위치를 가늠해야할 기준점이었는데,
만약 그 때도 네비게이션이 있었다면 경안선교관사를 쳐넣었을텐데,
그 기준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참 오랫동안 말이다.
그러다 오늘 만난 시 한 편!
담쟁이 그물에 갇힌 폐가를 읽으며 나의 주절거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항상 세상에 붙어있으려는 듯이 촉수를 갖다대고 온몸으로 붙어있는 폼이
붙어있는 곳이 세상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몸이기도 한
내 몸에 붙어 세상에 붙어 두 손, 네 손, 여덟 손..... 손모양 주절거림이 늘어가는 폼이
내 주절거림은 담쟁이덩쿨처럼 나를 감추어주고 덮어주고 붙여주고 빛내주고 살려주고 ... 그러다 제 풀에 삭는 것.
언젠가는 제 풀에 삭아 허물어질 이 주절거림은
이렇게 죽을 가지를 뻗고 있는 주절거림은
어느 날은
아픈 곳 핥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뜨거운 태양볕도 가려준다네
......
낡고 병든 몸 감싸주던 온기가 어느 순간 질기디질긴 밧줄로 변해 있으리라는 것
이제는 혼자서 눈조차 감을 줄 모르는 그 집,
이 집, 주절거림의 집!
독인가 약인가
그로 인해 빛났다.
그로 인해 그늘이었다.
그로 인해 푸르다
그로 인해 붉다
그는 내게 독인가 약인가
초록담쟁이 경안선교관은 지금 있기는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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