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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김혜순] 쥐

by 발비(發飛) 2007. 3. 9.
 


김 혜 순

 

 환한 아침 속으로 들어서면 언제나 들리는 것 같은 비명. 너무 커서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어젯밤의 어둠이 내지르는 비명. 오늘 아침 허공중에 느닷없이 희디힌 비명이 아 아 아 아 흩뿌

려지다가 거두어졌다 사람들은 알까? 한밤중 불을 탁 켜면 그 밤의 어둠이 얼마나 아파하는지

를. 나는 밤이 와도 불을 못 켜겠네 첫눈 내린 날, 내시경 찍고 왔다 그 다음 아무에게나 물어

보았다 너 내장 속에 불 켜본 적 있니? 한없이 질량이 나가는 어둠, 이것이 나의 본질이었나? 내

어둠 속에 불이 켜졌을 때, 나는 마치 압핀에 꽂힌 풍뎅이처럼, 주둥이에 검은 줄을 물고 붕 붕

붕 붕 고개를 내흔들었다 단숨에 나는 파충류를 거쳐 빛에 맞아 뒤집어진 풍뎅이로 역진화해나

갔다 나의 존엄성은 검은 내부, 바로 이 어둠 속에 숨어 있었나? 불을 탁 켜자 나의 지하 감옥,

그 속의 내 사랑하는 흑인이 벌벌 떨었다 이 밤, 창밖에서 들어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내 방의

상한 벽들이 부르르 떨고, 수만 개의 아픈 빛살이 웅크린 검은 얼굴의 나를 들쑤시네. 첫눈 내

린 날, 어디로 가버렸는지 흰 눈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창밖으로 불 밝힌 집들. 밤은 저 빛이

얼마나 아플까

 

 

시인이여!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시를 읽은 첫 말!  좋다.

이 시를 읽은 첫 느낌!  아픈가보다.

위내시경을 한거지.

얼마나 아팠을까? 아니 수면내시경이었을거야.

어떻게 되는 것을 알았던 거지. 이미 아팠던 것이지. 내시경과는 상관없이 아팠던거지.

그리고 시를 썼던거지. 시를 발견한거지.

시의 발견.

시인의 시발견은 흙덩이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혜안과 정성과 끈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미안하다 사랑한다.

위장장애를 앓고 있는 고통 속에서 시를 찾아야하는 시인의 고통이 난 더 도드라져 보인다.

시인은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의 정체가 몰래 숨겨놓은 자신 속의 자아라고 한다.

그리고 자아는 영원히 어둠 속에서 있고 싶다는 듯이 말한다.

드러내지 말아야 할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치부처럼

아니면 지켜야 할 보석처럼

그러나 불빛에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야 말았다는 것, 싫었나보다.

내 안의 검은 것들을 대명천지로 끌어내는 것보다는 꼭꼭 숨겨두고 싶었나보다.

그런 시인이 시를 쓴다.

자신은 어둠 속에 묻어두고 싶다면서 시를 쓴다.

시를 쓰느라 제대로 아픈 것에 몰입조차하지 못한다.

아파도 시에 대한 상상력에 촉수를 세우고 있다. 밤이 아플거라면서 말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함은

그 시인의 말소리에 가끔은 돈오한다는 것이지.

짧은 돈오 뒤에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일 지라도 삶에 대한 돈오를 한다는 것이지.

미안할밖에

사랑할밖에

 

창밖으로 불 밝힌 집들. 밤은 저 빛이 얼마나 아플까

 

그래 얼마나 아플까.

난 아주 간혹 반짝이는 별이 더 아파보일 때가 있었는데, 지금 시인의 마음이 아프다는 거잖아.

간혹이 아니라 아플 때조차도 아프다는 거잖아.

 

사랑 이라는 것,

애정 이라는 것.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람이여!

그대 아프지 마소서,

빛나지 않더라도 아프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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