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W. Whitman] 나는 앉아서 바라본다

by 발비(發飛) 2006. 12. 29.

나는 앉아서 바라본다

 

월트 휘트먼(1819-1892)

 

 

  나는 앉아서 바라본다, 세상의 모든 슬픔 온갖 억압과 치욕을

 

  나는 듣는다, 이미 저지른 행위를 뉘우쳐 가책하는 젊은이들이 남몰래 경련하듯 흐느끼는 소리를

 

  나는 본다. 없는 살림 속 자식들에게 구박받고 돌보아 주는 이 없이 초췌하며 절망하며 죽어가는 어머니를

 

  나는 본다, 지아비에게 소박맞은 지어미를 , 젊은 아가씨들을 우리는 겉 속다른 난봉꾼을

 

  나는 본다, 시샘과 억압없는 사랑의 아픔을 감추려는 것을

 

  나는 본다, 이러한 땅 위의 광경을

 

  나는 본다, 전쟁, 역병, 학정의 소행을

 

  나는 본다, 순교자와 죄수들을

 

  나는 본다, 해상의 饋饉을, 동료의 목숨을 잇기 위해 누구를 죽여야 할까 제비를 뽑는 선원들을

 

  나는 본다, 오만한 자들이 노동자와 없는 사람들, 흑인이나 그 등속 사람들에게 던지는 모멸과 학대를

 

  이러한 모든 것- 온갖 치사함과 고통을 끝없이 나는 앉아서 본다

                        보고 들으면서 잠자고 있다.

 

 

풀잎-

민음사 세계시인선 25번, 월트 휘트먼/ 유종호옮김

 

[풀잎] 이라는 월트 휘트먼의 시집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옮겨놓는다.

월트 휘트먼, 미국시인이며 정치가, 링컨지지파.

미국의 민주주의 시인이라고 미국 외의 나라에서 불리어진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우리나라 80년대의 참여시들을 읽는 듯 하다.

낮은 사람들을 보면서도 낮은 사람들과 동화되었다기 보다는 그의 시처럼 앉아서 보기만 하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보면서 가슴이 아파할 수는 있지만,

상대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육화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이로서 할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이다.

예수가 이세상에 와서 메시아로 인정받는 것은 인간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육화했기때문이라면,

삼위일체의 교리를 적용해서 보면 결국 그것은 신의 영역인 것이다.

 

앉아서 본다.

나는 앉아서 본다.

의자에 앉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앉아서 본다.

앉아서 본다는 것,

눈높이가 낮다.

낮은 눈높이에서 보는 세상은 하찮은 것들로만 가득하다.

바닥을 기는 벌레부터 태양에 역광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까지 모두 어두운 것들이지.

시인은 앉아서 낮게 사는 것들을 바라본다.

우리의 가족들이며 친구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상처를 받은 무리들이다

자식에게서 버림받은 부모, 이웃으로부터 격리된 젊은이, 난봉꾼에게 농락당하는 여자들, 너를 먹어야 내가 사는 전쟁이나 생존,

그 모든 것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것들을 앉아서 본다.

시인의 위치가 높다.

시인은 그들이 아니다.

그들을 높고 보는, 그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육화하지는 못하지만 아파하기는 한,

육화시키지 못해 아파하는,

죽을 때까지 앉아서 바라보기만 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시인....

결국 그들을 포기하기로 하는군!

잔다.

졸려... 서 잔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누구하고도 나눠가질 수 없는 것.

높은 자리이든 낮은 자리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어떤 것도 나눠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나눠 가질 수 있다고 잠시 착각할 뿐, 나눠 가졌다고 속았을 뿐.

 

결국 삶이라는 것은 누구하고도 나눠가질 수 없는 것.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몸뚱이로 만들어진 이상,

어떤 것도 내 몸안으로 들어와 나의 몸을 바꿀 수는 없는 것,

결국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로만 살아가게 되는 것,

남의 인생은 남의 인생,

나의 인생은 나의 인생!

 

시인은 낮은 인간을 위해 싸우던 민주주의 운동가였다.

그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난 하얀 눈을 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휘트먼의 시 한 편 더!

좀 긍정버전으로.....

 

거꾸로

 

월트 휘트먼

 

앞줄에 섰던 이를 뒤로 보내라

뒷줄에 있는 이를 앞으로 나가게 하라

고집통이, 얼간이, 때묻은 이들로 하여

새 제안을 내도록 하여

낡은 제안을 뒤로 미루고

사나이로 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도처에서 기쁨을 찾게 하라

계집으로 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도처에서 기쁨을 찾게 하라

 

이 시 좋다.

앞의 시와는 달리, 마중물을 부었는 듯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지금과는 달랐으면 한다.

지금을 완전히 뒤집었으면 한다.

잠시만이라도 지금이 아니었으면 한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문학추천집] 천상병 강물  (0) 2006.12.31
[최승호] 몸의 신비, 혹은 사랑  (0) 2006.12.29
[최승자] 기억의 집  (0) 2006.12.27
[김근] 빨강 빨강  (0) 2006.12.21
[장석주] 햇빛사냥  (0) 2006.12.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