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김경주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에 간직한
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
빨간 거미 한 마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주머니에 못이 가득하다.
못을 내려놓고 낡은 여관에 들어가다.
낡은 여관에서 몸을 휘다.
입 밖으로 기어나온 빨간 거미 한 마리가 나올때까지 몸을 휘다.
내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다.
비로소 주인이 되다.
울면서 주인되다.
주인이 되다.
.
.
.
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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