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엿보다- 황천반점에서 32
윤제림
봄이 오는 강변에
의자 하나 앉아 있었습니다
의자의 무릎 위엔 젖은 손수건 한 장
동행인 듯, 고개 숙인 나무 한 그루가
의자의 어깨를 짚고 서 있었지만
의자는 그냥 강물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의자는 많이 울었고
나무는 오래 참았던 모양입니다.
허나, 물빛도 낯빛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풀어지는 걸로 보아
영 끝난 사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무가 의자를 껴안는 광경까진
못 보았으나.
한 친구가 생각납니다.
이별을 했다고......
그 친구는 그의 연인과 몇 번의 이별과 만남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별이 거듭될수록 충격의 진동은 잦아들고 있기는 하지만, 매번 힘들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널 항상 힘들게 하는, 그애 뭐가 그리 좋니?
미스코리아처럼 예뻐.
...... 제가 주제 넘게 거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계속 가는 거지 뭐. 어느 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나설 때까진......
봄이 오는 강변에 겨울을 이기고, 두꺼운 나무껍질을 이기고 나온 촉촉한 나뭇잎 하나 의자 위에 떨어져있다.
나뭇잎 위로 좀 만 눈길을 주면 나무가 서 있다.
봄이슬에 더 촉촉해진 나무와 나뭇잎, 그리고 의자.
봄강물은 불는다. 수위를 높힌다. 차 오른다.
시인은 겨울 찬 바람을 이기고 나온 뒤라 그런지 냉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저 남의 일인듯 보는데로 말을 흘립니다.
냉냉한 말투는 믿음과 모양이 닮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려나 봅니다.
지금은 밖에서 가을비가 내리고, 색 고운 나뭇잎들은 젖은 바닥에 깔려있습니다.
단풍든 나무도 이쁘지만,
제게는 지금 비오는 거리, 반짝이는 빗물 위에 깔린 나뭇잎들이 더 이쁘게 보입니다.
곧,
부서져 사라질 단풍잎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은 길위에 흩어진 단풍잎들이 무척이나 이쁩니다.
단풍잎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비는 계속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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