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의 기준이 지난 시간 어디쯤이 되었다.
눈을 뜨기도 전인 아침 내게 떠오른 생각은
나의 말이 없다, 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봐도 그것들을 만든 사람의 생각을 알아채기보다
그것들을 본 내 생각과 말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그때의 나는 내 안의 말들이 너무 많아 그들의 생각을 가늠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문청시절을 보낼 때에도 그랬다.
많은 문청 동료들이 선배의 글들을 레퍼런스로 삼을 때도 나는 내 안에서 넘쳐나는 말들을 뱉어내기 바빴다.
밤을 꼴딱새고도 흘러나오는 말을 다 담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나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자판에 손을 올려놓으면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쏟아져나온 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판을 두드려 기록하고는 한숨을 돌리고나서
읽어보면 내 안의 생각과 말들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한 발 늦게 알아채고는 했다.
그때 나는 그저 그분이 오셨다는 말로 그런 나를 가벼이 넘겼다.
내 말이 가득하던 때였다.
영화를 봐도 누가 주인공인지, 무슨 스토리인지 보다는 그저 세상구경에 몰입했다.
그리고 그곳 세상에서 있는 나를 상상하기에 바빴다.
영화의 제목도, 배우에 관한 정보도 내게 남아있지 않고, 오직 영화 속 어느 곳에 서 있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도저히 영화 속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을 때 나는 그곳으로 떠나 한동안 지내다가 돌아왔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인 디스 월드]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앙역] [더 웨이]........
이런 영화를 보고 나는 그곳에 갔다.
내가 나를 따라다녔다.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트 혹은 책의 귀퉁이에 생각없이 선을 그었다.
이유없이 선에만 몰입하여 선을 긋다보면 형태가 나오고,
형태가 만들어지면 가장 마지막에 상황을 만들어보면 그림 같지 않은 웃기는 그림이 되곤 했다.
그런 그림들은 폐기된 노트나 헌책으로 팔려가 지금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감당하지 못한 내가 있어서 그때의 나는 내가 버거웠던 것 같다.
오늘 아침 눈을 뜨기도 전에,
'나의 말이 없다' 는 말이 맺힌 지 한 시간 쯤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말이 하고 싶다' 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말을 찾고 싶다.
지난 3월 한 달은 카프카를 읽었다.
띄엄띄엄 천천히 그의 말과 생각을 쫓아갔다.
내가 언제 그의 책들을 읽었나 싶게 처음 읽은 듯 낯설었다.
무엇보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깊게 박혀 아프고 답답했다.
소설 속의 K들과 그레고르, 카를, 게오르그는 카프카였지만 놀라울 정도로 '나'였다.
그런데도 말이 멈췄다.
오래 비어있었던 시골집 마당 한켠의 지하수 펌프처럼 말라버렸다.
땅 속 깊이 흐르는 물길은 그곳을 지나쳐 흐른지 오래되었지.
4월은 카뮈를 읽을 예정이다.
몇 편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 말은 없고, 그들의 말만 남더라도,
내 말이 없으니, 그들의 말이라도 남아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겠지.
그들을 의지해 내가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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