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가 만든 세상은 늪 천지이다.
카프카가 만든 이야기 속 인물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어떻든,
빠져나올 수 없고,
발을 디딜 곳이 불확실할 뿐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조금씩 혹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작년부터 해 오던 독서모임이 있다.
올해부터 스스로 정한 방침(?)이 있는데,
그건 그 달에 읽을 책이 정해지면,
그 저자의 책을 되도록이면 많이 읽는 것이다.
3월은 카프카의 [변신]이었고,
독서모임이 끝났음에도 어제 그러니까 3월 31일까지 카프카의 글들을 읽었다.
[변신] 그리고 [선고] [시골의사] 등 같은 책에 수록된 몇몇 단편들과
전자책으로 가지고 있었던 [성]은 결국 다 읽지는 못했지만 반은 넘긴 듯 하고,
민음사와 교보가 함께 펴낸 디에센셜 [카프카]에 수록된 [실종] 그리고 함께 실린 몇 개의 단편과 카프가의 편지들을 읽었다.
카프카의 세계에는 이유가 없었다.
[선고]에서는 아들에게 죽음을 선고한 이유가 없었고, 아들이 죽은 이유도 없었다.
[변신]에서는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이유가 없었으며
[실종]에서는 삶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질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성]의 K 또한 이유없이 성 주변을 돌기만하는 할 뿐만 아니라 이유를 찾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밑도 끝도 없이 죽거나 무한루프로 회전하다가 죽거나 사라진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소멸된다. 소멸 당한다.
몇 편의 중단편은 그나마 견딜만 하였지만, 장편은 무한루프를 함께 타고 있는 듯 힘이 들었고,
가끔 공포스러웠다.
어쩌면 나의 삶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싶은 생각과 함께 그 끝이 카프카의 이야기와 같을 거라면, 무서웠다. 어리석기 짝이 없어보이는 삶과 삶의 끝이다.
카프카의 주인공들은 모두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다.
변신의 그레고리, 선고의 게오르크, 실종의 카를, 성의 K...
그들을 살아가지만 세상은 그들을 밀어낸다.
그들은 뭐라도 하려고 하지만 세상은 차갑게 침묵한다.
그들의 삶을 끝내거나 사라진 뒤에서 세상은 마치 그들이 없었던 듯 내색이 없다.
끝내 그랬다.
말이 안되는 이 상황이 흔히 말하는 '부조리'라는 것인지,
'부조리'라는 말 또한 이들의 처한 상황만큼이나 갑갑하다.
밤사이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도
갑자기 삶을 끝내버린 게오르그도
끝없이 계속되는 삶을 살아가는 카를도 내게 공포로 다가왔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내 선악과 상관없이 놓여지게 되었던 그 때의 시간들이 있었고, 그런 세상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어린 카를처럼
그 때의 깜냥으로 정직하고 최선을 다했으나 이유도 없이 설명도 없이
그들 사이에서 밀려났다. 나는 그곳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세상 여기저기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지금 나는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았던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 나는 카를이 계곡의 점으로 사라졌던 그 끝점에 놓여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더한 끝점으로 내몰고 있는 지금의 세상을 거부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유도 의미도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4월 독서모임의 책은 《이방인》이다.
카뮈는, 카프카가 열어놓은 비극적인 부조리의 세상에 어떤 점을 더했는지.
"부조리는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비합리적인 침묵이 대면할 때 태어난다."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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