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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동생과 텃밭에서 밥을 먹었다

by 발비(發飛) 2026. 4. 18.

동생이 부산으로 출장을 가는 길에 집에 들를 거라고 했다. 

엄마는 저녁시간에 도착해 다음날 이른 아침 부산으로 가야하는 동생에게 저녁메뉴를 물어볼라고 했다. 

선택지는 자작한 갈치조림과 새끼방어인 사배기조림. 

동생은 사배기조림을 선택했다. 

 

텃밭에 바질, 루꼴라, 고수, 깻잎 모종을 심어야해서 텃밭에 갔다가 동생을 픽업하러 나갈 거라고 톡을 했다.

톡을 하고 보니, 동생에게 새로운 텃밭도 보여주고 싶기도 해서 픽업해서 잠깐 텃밭에 들러 모종을 심으면 될 것 같다고,

잠깐 바람도 쐬고 어떠냐고 물었다. 삼십분 정도 밖에 안 걸릴 거라고. 

 

"그러게.  바람 쐰지도 오래됐다고, 나는."  이라고 답이 왔다. 

 

그러자고 가볍게 대답하고는..., 바람을 쐰지 오래되었다는 말이, 작게 남은 숨으로 나눠가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발적으로 엄마에게 저녁을 텃밭에서 간고등어나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게 어떠냐고, 

지금 한창 나고 있는 두릅도 있고, 표고버섯도 잘 자라고 있으니(물론 이것들은 텃밭주인 거다),

신선하고도 향긋한 것들을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다고, 

엄마는 좋은 생각이라며 그러자고 했다. 

 

텃밭주인(이제 '지주'라고 불러야겠다)에게 톡을 해서 텃밭에 언제 오냐고 톡을 보냈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고, 집도 대구라 늘 있지는 않아서 그를 보려면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마침 저녁에 온다고 했고, 안지주도 같이 온다고, 너무 좋다고 했다.

메뉴는 삼겹살보다는 간고등어맘 숯불에 굽자고 했다. 

지주나 안지주는 가만히 있고, 오늘은 내가 다 준비할 거라고 미안함을 대신했다. 

 

시장에서 간고등어 한손을 사고, 과일도 사고, 막걸리도 사고....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을 픽업해서 밭으로 가면서 거기서 밥을 먹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젊은 사람들끼리 편하게 먹는 것이 좋을 거라고 안 온다고 했다고.

엄마를 보러 온 동생이 황당해 했지만, 이미 벌려좋은 일이라 그냥 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생과 지주 내외의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지주는 밭구경과 두릅과 표고버섯을 현장체험 시켜준다고 동생을 안내했다. 

나는 고등어를 굽고, 된장을 끓이고, 갓 딴 두릅으로 전을 부치고,

안지주는 버섯밥을 안치고, 비닐하우스에서 상추와 미나리를 따고, 두릅을 데치고, 생표고버섯을 찍어먹을 기름장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같이 비오는 농막 테라스 테이블에 앉았다.

 

동생이 '너무 좋은데, 너무 맛있는데, 좋네요." 한다.

갓 딴 상추를 먹으며 이렇게 싱싱한 상추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두릅과 버섯도 꽤 많이 먹었다.

적당한 양의 비가 내리는 산기슭 밭에서 별 거 아닌 이야기를 하며

바로 옆에서 수확한 것들로 동생과 저녁을 먹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동생의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같이 정신없이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이런 삶을 살고 있는 내게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다. 

동생이 이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좋은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구나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비싸고 맛난 음식이 아닌데도, 좋은 것이라고 명확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좋은 음식을 먹고 사는 거였네. 

늘 말하는 출처를 분명히 알고 있는 음식이 주는 기쁨이 있다. 

동생이 퇴직 후에 나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요즘도 뭘 하지 않는 삶에 대한 내적 불안함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페북도 인스타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동료들은 여전히 일을 하고, 여전히 살던 터전에서 같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의 삶의 터전에서도 벗어나 있고, 내가 속했던 사회관계에서도 이탈했다. 

아직도 고향인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지 사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어제 동생과 밥을 텃밭 농막 테라스에서 밥을 먹으면서,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나누고 싶었고 자연스러웠으니 나는 5월 초의 상추정도는 되는 것 같다. 

 

두 시간 정도 보내고 동생과 집으로 오면서, 둘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현실남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엄마한테 가자고 했더랬는데, 그렇게 했다. 

 

동생은 아침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바람을  쐰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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