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목난로 작은 비닐하우스 안 화목난로 앞에 중년 세 남자가 둘러앉아있다.화목난로는 이 비닐하우스의 주인남자가 가스통으로 직접 만들었다. 주인은 뭐든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셋은 자리하지 않은 한 남자와 화목난로의 과학이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남자는 함께 있지 않았지만, 세 남자가 함께 한 시간 동안 한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함께 한 듯 했다. 세 남자가 온 신경을 쏟고 있는 화목난로와 그가 같은 자리, 같은 온도로 있는 듯 하다.셋은 자리하지 않은 남자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함께 있지 않았지만 세남자의 눈길이 떠나지 않은 화목난로 자리, 그들의 가운데 앉아 있는 듯 했다. 세 남자는 막 피우가 시작한 난로 안의 장작이 잘 타고 있는지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노란 불.. 2024.11.05
- [우지현] 풍덩 완전한 휴식 속으로 몸을 담글 수 있는 물을 찾아 안동에 있는 학가산 온천을 다녀왔다. 그곳에는 노천탕이 있고, 꽤 넓고 깊은 냉탕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든 물에 몸을 얹어두고 싶기도 하고, 물 속에 몸을 눌러 보고 싶기도 하고, 발을 조금 움직여 물 속에서 조금 전진하고 싶기도 했다. 우지현작가의 다 읽지도 않았는데, 나는 참을 수 없이 물 속에 잠기고 싶었다. 물속에서의 적막과 고막으로 들려오는 울림, 몸의 구석구석 밀고 들어오는 수압까지, 물의 섬세한 친밀함을 느끼고 싶었다. '넓고 탁 트인 강과 마주하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고, 해변에 앉아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모든 걱정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쏟아지는 폭포수는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주었고,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면 .. 2024.09.22
- 가을을 위한 이틀 텃밭주인에게서 배추와 무를 심어야 할 때라는 문자를 받았다. 유튜브에 배추와 무에 대해 찾아보니, 배추는 모종, 무는 씨. 그리고 배추벌레 퇴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시장 철물점에 가서 배추 벌레 안 들어오게 하려면 뭘 해줘야 하냐고 여쭤보니,땅이 얼마만하냐 몇 포기냐 물으셨다.땅은 손바닥만하다고 하며, 좁은 가게의 반정도라고 가늠해드리고,배추는 아직 안 샀는데..., 이 정도 크기에 두 고랑 정도 생각하고 있다고 가게의 가로폭을 몇 동강 내며 손을 휘저었다.철물점의 친절한 사장님은 진지하게 고민하시더니, 보통 배추밭에 치는 하얀 방충망은 커서 안되고, 자를 수도 없고 하니 모기창이 좋겠다.그리고 모기장은 폭이 좁이니 한 고랑씩 작은 비닐하우스 같은 모양으로 치는 것이 좋겠다.10마 정도면 될거다. .. 2024.09.12
- 인터넷이 안 되던 날 인터넷 와이파이가 만 하루동안 장애가 있었다.처음 몇 시간은 방을 옮긴 탓에 와이파이 거리가 멀어서 그런가 하고, 원격장치를 사야하나 생각했다.며칠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컴퓨터에서 지시하는대로 셋톱박스와 공유기 재부팅을 수십번 한 것 같다. 실패.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 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인터넷 공유기 장애라고 했다.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우리 집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에서 일어난 일이니 어쨌든 고쳐주겠지.처음에는 아파트 전체 전기 관리의 날이라 몇 시간동안 정전되었던 것이 문제를 일으킨 걸까이런 저런 생각을 했던 걸 보면,기계나 컴퓨터 같은 것들을 또래에 비해 잘 다룬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긴장감은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잠들기 전 핸펀을 보는 대신, 오랫만에 전자책 리더기를 꺼내.. 2024.09.07
- 끝 여름 말랐다고 해야하나 여물었다고 해야하나 꽃 피우고 꽃잎 진 마른 자리에 씨가 잔뜩 들어앉아있다. 손가락을 종지모양으로 말아 꽃대부터 훑었더니 손바닥에 무게도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무게도 없는 것들이 똘똘 뭉쳐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꽃씨들은 각각의 꽃진 꽃대에 잘 싸여있다. 나는 두 손바닥을 쫙 펴고 빙글빙글, 좀 더 작게, 좀 더 단단하게 말았다. 집에 갈 때까지 하나라도 이탈, 떨어지지 않도록 할 속셈이었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동안 아마 내 삶에서 가장 많은 꽃들을 보았던 것 같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 집으로 달려 들어가기 바빴고, 약속장소로 뛰기 바빴던 와중에도 꽃들이 있었다. 바쁜 걸음을 걸었던 뒤통수에도, 지금도 알록달록한 갖가지 모양들이 잔영으로 남아있다. 그 사이 꽃씨를 움켜잡았는.. 2024.09.05
- 일곱시 반 기상 그리고 네 권의 책 일곱시 반에 일어난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일곱시 반에 회의에 참석한 것도 아니고, 출근을 한 것도 아니고, 여행지에서 산책을 한 것도 아니고,그저 일어났을 뿐인데,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여름내내 너무 더워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일어나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 종일 짜증을 낼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정신 건강을 위해서 최대한 늦게 일어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최근에 정치권에서 많이 떠돌았던 이야기.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딱 그거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들어왔다.움직일만한 날씨가 되었다. 9월이다. 일곱시 반에 일어난 기념으로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블로그를 열었더니, 14년 전 사르트르의 라는 희곡을 읽고 쓴 글에 이 .. 2024.09.03
- 어제와 오늘의 메시지들 1.그저께 늦은 밤 부재 중 전화가 두 통이나 있었다. 한 사람에게서. 확인한 시간이 너무 늦어 그냥 뒀는데, 새벽에 문자메시지가 왔다.'아깐 문득 너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어서....'그리고,'문득 문득 드는 생각들? 너라면 재밌게 들어줄 것 같은 얘기들'그래, 그럴 때가 있고 그럴 사람이 있지.문득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다시 그 이야기를 할래도 그 마음이 아닌거지.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었고, 그런 이야기였다는 것을 아는 사이는 좀 괜찮은 거 아닌가.나는 전화 온 이에 대해 생각을 좀 달리 하기로 했다.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그 이야기 해도 되는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 하는 후회가 없도록누군가가 어떤 사람인 것보다는 내게 어떤 사람인가가 더.. 2024.08.24
- 태풍 종다리가 온다는데, 그래서인지 나무가 흔들리고 바람이 분다 도서관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가을이다. 나무들은 초록에서 노랗게들 변해가는 중이고, 아파트 사이로 경작해 놓은 텃밭들은 이미 수확을 끝낸 곳도 많이 보인다. 도서관의 실내는 에어컨으로 서늘하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과 피부로 느끼는 것은 깊은 가을의 풍경이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내가 생각한 계절과 겪은 계절의 차이이다.8월은 가장 강렬한 여름이므로, 나무나 풀들도 그들의 절정기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7월말부터 나무나 풀들은 내가 아는 가을의 모습이었다. 봄에 심은 상추, 토마토, 오이 뭐 이런 것들은 이미 역할을 끝내고 다음 작물들을 위해 자리를 내 준 지 오래다.물론, 나같이 초보라 남들보다 늦게 심고, 게으르게 가을 작물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이들은 작물들의 생노병사를 오롯이.. 2024.08.20
- 두통 생각을 멈추는 일이 잘 되지 않았다.깨어있는 시간 동안 생각이 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 머리를 흔드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잠을 자야 생각이 멈춘다. 지금 잠이 필요한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이 멈추는 시간, 잠.의식이 멈추는 시간, 잠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잠뿐인 듯 하다. 어제는 두통이 너무 심했고, 병원에 갔다. 감정통제가 되지 않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지 며칠이다.그냥 내달리기만 하는 생각과 감정, 어제부터는 두통이 시작되었다. 몸까지 합세한 거다.생각과 감정, 몸. 이것들이 '삶'을 건드리는 느낌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내 것들을 그냥 아슬하게 힘이 빠져 멈추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단어가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길 매 순간 기도하고,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이.. 2024.07.13
- 집중 폭우가 멈춘 텃밭에 해가 뜨고 비가 멈췄다.비는 내내 많이도 왔고, 그 사이 두 번 정도 텃밭을 다녀왔다. 고추 몇 개를 따왔을 뿐, 다들 무사한지 안부만 보고 왔었다. 오늘 아침 해가 뜰 기미가 보였고,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텃밭에 다녀왔다. 하늘에서는 비가 멈췄는데, 텃밭에는 비가 계속 오고 있는 듯 했다. 텃밭 바로 옆이 산인데,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빗물이 밭고랑 사이로 제법 흐르고 있었다. 마치 시냇물처럼. 산 경계에 심어둔 옥수수는 기우뚱하게 몸을 눕힌 것이 몇 개나 되었다. 옥수수대를 똑바로 세워보려하였으나,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고여서인지 땅이 물컹하여 다시 기우뚱한다. 옥수수대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도록 살짝 얹어두었는데 결과는 모르겠다. 옥수수대 뒤로 한달전쯤 옮겨심은 블루베리도 걱정이긴 마찬가지다.통기.. 202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