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한 것들
정병근
나무는 서 있는 한 모습으로
나의 눈을 푸르게 길들이고
물은 흐르는 한 천성으로
내 귀를
바다에까지 열어 놓는다
발에 밟히면서 잘 움직거리지 않는 돌들
간혹,천길 낭떠러지로 내 걸음을 막는다
부디 거스르지 마라,
하찮은 맹세에도
입술 베이는 풀의 결기는 있다
보지 않아도 아무 산 그 어디엔
원추리꽃 활짝 피어서
지금쯤 한
비바람 맞으며
단호하게 지고 있을 걸
서 있는 것들, 흔들리는 것들, 잘 움직거리지 않는 것들,
환하게 피고지는
것들
추호의 망설임도 한점 미련도 없이
제갈길 가는 것들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들
'暗中謀索'- 어둠 속에서 뭔가를
찾는다.
정병근 시인은 눈이 밝은 사람인 듯 싶다.
시인들이 그렇지만, 지나쳐보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본다는 것은 눈은 외부를 향하는 렌즈를 가지고 있지만, 때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렌즈의
방향을 대놓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정병근시인은 렌즈를 항상 바깥으로 향해두고 있다.
그리고 렌즈가 포착한 것에 그냥 자신을 둔다.
그리고 자신과 렌즈가 포착한 것이 어울려 노는 것을 또 다른 렌즈로 보고 있는 듯 싶다.
단호한 것들.
.
.
.
정병근 시인은 어느 글에서 올해 자신의 화두를 '暗中謀索'으로 정했다고 했다.
그 글을 읽고 '단호한 것들'이라는 시가 같이 떠올랐다.
나도
나도
나도
나도
그래 바로 그거야. 암중모색... 어둠속에서 길을 찾는 것
그래 나도 올해의 화두를 암중모색으로 하자.
어둡지. 너무 어둡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 그렇지만 길은 보이지 않을 뿐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걸 모르다니...
길은 있는 것인데, 그저 어두워서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어둠에 익숙해지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조심조심 길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나가는 것이다.
그가 본 나무가 돌이 풀이 꽃이 어디 길이 있어서 자라고 자리한 것인가?
단호히 그들의 길을 길이라고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무 돌 풀 꽃도 찾아가는 길을 나도 가는 것이다.
나만 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가는 것이다.
어둡다고 안 보인다고...무서울 것도 없고, 떨 것도 없다.
눈도 코도 입도 사지도 없는 것들도 단호히 제 길을 찾아가고 있다.
암중모색.
눈도 코도 입도 사지도 다 있다. 난 그것들을 이용해서 길을 찾아가면 된다.
정병근시인님의 화두를 나도! 하면서 손들고 따라간다. 그러기로 했다.
시인은 절대 그런 줄도 모르고 어둠 속을 앞에서 저벅저벅 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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