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악마주의
김형영
1.문맹
내 어린 애인을 입맞추어라
징그러운 눈이여.
네가 달아날 때는
미친 내 잔등의
긴물결, 거품 속으로
보랏빛 속으로
사랑은 침몰하여 바르르 떤다.
그 울림은
분 바른 고요를 부풀게 한다.
꾸밈없는 여름밤의 속눈썹을 움켜쥐고
먼동이 튼다
불편한 대낮에도
무능에도 低俗에도
나는 장님이 아니었다
2.만남
아버지의 죽음이 왔다 간 다음날은
그 다음 다음 날에는
겁에 질린 독역을 놓고
그대가 뜨는 눈초리마다 숨결로 타오르며
어디로 달아날까.
인경을 치던 몸살도
몸살하는 밞도 떼지어 사라지고
그 마지막 남은 흔적도 이제 없다
목이 잘린 육체 속에서 얼굴을 내밀듯이
달달달달 떠는 사랑이여
어디로 달아날까
3. 공포
나의 피는 밀물쳐
바다로 돌아간다.
내가 잡을 수 없는
검은 덤불 속에 등불이 켜 있다.
등불은 내 오장육부에 들어와
회충이 되어 기어다니며
밖에서는 바람이 꽃 속에서 분다.
문 앞에 우뚝 선 두려움
두려움의 두려움이여
다른 곳에서의 바람이여
나는 눈멀었다, 바라보면서
눈멀었다. 떨면서
4. 流産
이 방에 있으면서, 나는
지옥을 기웃거리는
한 마리 개똥벌레가 되었다
골목마다 시퍼렇게 나는 알몸은
불에 그슬려
비틀거리고 빠져나가고
때로 잠투정한다
밤마다 치솟는 별 없이
달아나는 풀의 예배당에 들어갈 수 없다
나의 캄캄한 하품은
이제 나의 게으름을 알고 있다
그칠 줄 모르는 눈빛 화살로
바위들을 쪼면서
오월과 유월을 붉게 핀다.
나는 나의 배꼽을 후벼내고
지옥의 꽃대궁속으로
오장육부를 동댕이쳤다
파도 치는 어둠이 내 이마를 짚고
미친다 미친다 미침은 하늘이다.
바라보라. 아무데서나
웃는 계집의 자궁 속으로 죽어가고 있는
표정없는 얼굴로
떨어지는 알몸의 내가 다시 살아날 때
바라보라, 죽음만이 우리를 미치게 하는 것을.
어느 책을 들추다가, '나의 악마주의'라는 제목에 꽂혀 읽어내려갔다.
???????????????
모른다.
모르면, 답답해야 하는게 원칙이다.
그런데, 읽고 있으니 시원한 느낌이 든다.
어떤 말인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데, 그저 읽어나가는 것만으로
시원한 것이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뜻 모를 소리를 장단을 맞춰 어깨춤을 추듯이
교회의 부흥회 같은데서 방언(?)이라고 하나? 아무튼 그것에 흥이 나듯이...
'나의 악마주의'라는 제목만을 가지고 들어와 앉혀놓고, 읽는다.
소리내어 읽는다.
그저 뭔지 모르지만, 시원하다.
나도 뭔지 모를 시원한 소리를 하고 싶다.
시인이 들으면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시는 때로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그에 맞는 기쁨은 주는 것이다.
고등학교때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를 읽으면서 뭔지 모르지만,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신이 났던 것처럼...
어쩌면
'나의 악마주의'라는 제목만으로도 나에겐 시로 왔을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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