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정병근]업

by 발비(發飛) 2005. 12. 11.

 

정병근

 

 

산길, 너럭바위 옆에
바짝 붙은 소나무 한 그루
좋은 경치 바위에게 다 내주고
사지가 뒤틀린 채 서 있다

바위에 오르려면
꼭 소나무 둥치를 밟아야 하는데
사람 발 닿을 때마다
다부지게 몸 받치는 소나무

수많은 발길에 팬 몸 자국
우묵한 잇몸을 내보이며
웃고 있는
소나무

 

그리고 인정.

 

바위 옆에 서 있는 소나무는 온 몸을 뒤틀고 있다.

바위 옆에는 곧은 소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세상 모든 것들이 차고 앉은 자리는 각각이다.

곧은 소나무의 자리와 뒤틀린 소나무의 자리 또한 각각이다.

처음부터 그랬을 것이다.

바위 옆에 있기로 한 순간부터 소나무는 뒤틀려야함을 알았을 것이다.

바위 밑의 땅에는 또 바위가 있기마련이다.

바위 밑의 땅이 기름질 수는 없다.

소나무는 뿌리를 땅 속 바위들 틈으로 내려야한다. 바위 틈에선 먹을 것도 없다.

(무릉계곡 너른 바위 사이에 서 있는 앙상한 소나무를 생각해보라. 살아간다. 몇 백년을 앙상하게 살아가고 있다. 몇 백년 동안 앙상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소나무의 가지는 바위를 피해 제 몸을 뒤틀어야 한다.

가지가 바위를 뚫을 수는 없다.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소나무는 원래 가구재로도 쓸 수 없는 무르디 무른 나무이다.

바위의 굴곡 그대로 안고 자란다.

둥글면 둥근대로 모나면 모난대로 바위의 모양대로 소나무는 바위의 리듬 그래도 자란다.

사람들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나무는 사는 동안 바위에게 맘을 주며, 바위에게 맞추며, 바위를 제 스스로 선택해서 살기로 한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바위 위에 꼭 올라야겠단다.

멀리 보기 위해서 단단한 곳에 발을 두기 위해서 바위 위에 올라가야 한단다.

바위는 아무말 없이 사람들에게 제 몸을 내어 주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 바위를 따라 소나무도 제 몸을 내어주어야 한다.

바위가 다치지 않게 소나무의 몸을 더 뒤틀어야 한다.

사람들은 밟는다.

소나무를 사람들이 밟는다. 반동을 주며 바위로 올라간다.

한번씩 반동을 줄 때마다 소나무는 바늘 잎까지 파르르 떤다.

그러고도 반짝반짝 웃어준다.

사람들은 늘 잎이 떠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업!

 

"그래,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야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업이 아닐까? 업은 그저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인정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래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야지.

인정하면 그것이 업이된다.

 

다시 한번 시인의 눈에 감탄을 보낸다.

소나무에게서 업을 본 시인의 눈에 감탄한다. 그의 눈에 감사한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탄]당신은 꽃  (0) 2005.12.12
[이윤학]그 병원 앞  (0) 2005.12.11
[김형영] 나의 악마주의  (0) 2005.12.08
[조용미] 흙 속의 잠  (0) 2005.12.06
[서정주]기도  (0) 2005.12.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