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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복효근] 헌화가에 부쳐

by 발비(發飛) 2005. 8. 31.

헌화가에 부쳐

 

복효근

 

아무렴 그렇지

헌화가는 노인네가 불러야지

대가리 새파란 놈이 남 여편네 예쁘기로서니

언감생심 마음에 담았다간

그게 불륜인게여, 의업(意業)인게여

보라

타는 진달래는 여인의 속살빛깔로 고운데

때마침 훈풍에 서른 에닐곱 여인네 살내음 스쳐보아라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를 봄은 돌아왔는데

어디선들 힘이 솟구치지 않으랴

아무렴, 절벽은 높을수록 장관이지

백발은 세어 이제는 죽음도 대수롭지 않을 푼수가 되어서

스쳐간 거쳐간 사랑도 욕되지 않을 빛깔쯤은 되어서

잡은 암소 놓아도

제 외양간으로 알아서 돌아갈 이력은 되어서

어느 어여쁜 외간여자에겐들

헌화가 한 소절 못 부르랴

그 노래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함께 진달래 만발한 산굽이 돌다가

아내 곁에 두고

어서 백발로 폭삭 늙어버리고 싶은 오후였다

 

청춘과 바꾸어 버리고 싶을만큼 얻고 싶은 것.

그것은 진달래빛 연정이다

 

이 시를 읽고 무릎을 쳤다.

마저! 마저! 그러면서... 킥킥 그리면서...

 

난 여자, 시인은 남자

 

여자와 남자에 차이는 없다.

남자가 향내 짙은 꽃을 보면서

자신의 음탕한 마음을 맘껏 즐기지도 못하고 차라리 늙어버렸으면 하듯이

나도 그렇다.

내가 호박꽃이든, 진달래꽃이든, 코스모스든, 채송화든... 내가 무슨 꽃이든 그런 생각은 않고

내 앞으로 벌들이 날아다닌다면,

"에고 내 꽃에 와서 잠시 앉아다 가시죠... "그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그럼 시인처럼 생각한다

 

"에고! 뭘 생각하는것이야! 정신차려라..."

"그러면서, 에고 차라리 팍 시들어버려라. 나 안 헷갈리게..."ㅎㅎ

 

사람이 모두 같아서 좋다.

알고 보면 모두 같아서 좋다

내가 혼자서 음탕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 혼자서 음탕한 마음을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서 좋고

그런 것은 진달래빛 마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다 그래서 좋다.

멀쩡한 사람도 그 속에 작은 흠집하나를 갖고 있어서 좋다.

난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흠집을 보면 안도한다.

사람들이 모두 같아서 좋다.

반짝이고 윤이 나는 사람에게서도 작은 흠집이 있고, 그 반짝인 만큼 흠집을 더욱 아파할 것이므로 그것 또한 공평하고

온 몸이 흠집이라 차라리 흠집이 안보이는 그런 사람의 무감각해짐도 ,,, 그것 또한 공평하고

 

어제 이 시를 읽고 난 혼자서 많이 웃었다.

깔깔거림이 아니라, 입가에 웃음이 한 참 머물렀었다.

모두 같아서 좋았던 것이다.

내가 세상사람들과 같아서 안심되어

아마 이런 맘이 같다면 다른 나의 마음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난 그래서 시읽기를 좋아한다.

처음 만난 시인이었다. 복효근! 그가 누구지?

나를 안심시킨 시인....

그의 시 한 편을 더 찾아서 꼬리에 붙여둬야지. 또 안심하게...

 

 

 

다 스쳐보낸 뒤에야 사랑은 -오후의 시

 

 

세상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산길에선 정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정상이 어디냐 물으면
열이면 열
조그만 가면 된단다
안녕하세요 수인사하지만
이 험한 산길에서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
반갑다 말하면서 이내 스쳐가버리는
산길에선 믿을 사람 없다
징검다리 징검징검 건너뛰어
냇물 건너듯이
이 사람도 아니다 저 사람도
아니다  못 믿겠다 이 사람
저 사람 건중건중 한 나절 건너뛰다보니 산마루 다 왔다
그렇구나, 징검다리 없이
어찌 냇물을 건널 수 있었을까
아, 돌아가 껴안아주고 싶은,
다 멀어져버린 다음에야 그리움으로 남는
다 스쳐보낸 뒤에야 사랑으로 남는
그 사람 또 그 사람......
그들이 내가 도달할 정상이었구나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이 산길에 나 하나를 못 믿겠구나

 

정말 그런데...꼭 그런데.. 이 시인은 나에게 그 말만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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