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나태주] 풀꽃 외 1

by 발비(發飛) 2005. 8. 4.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

 

나 이미 오랜 전에 남의 아버지 되어버린 사람이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어린 아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세상한테 바람맞고 혼자가 되어 쓸쓸할 때

그늘 넓은 나무는 젊은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손길을 뻗쳐 나를 감싸주시고

푸르른 산은 이미 조아려 나를 내려다보며

젊은 아버지처럼 빙그레 웃음 지어 보이신다

짜아식 별걸 다 갖고 그러네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된다니까

난 머잖아 할아버지 될 입장이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철부지 손자거나 아예 어린 아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흘러가는 희구름은 잠시 머리 위에 멈춰서서

보일 듯 말 듯 외할머니 둥그스름함 얼굴 모습도 만들어주고

할머니 작달막한 뒷모습도 보여주지 않는가

오빠야 오빠야 때로는 이름 모를 조그만 풀꽃들 발 뒤꿈치를 따라오며

단발머리 어린 누이들처럼 쫑알쫑알 소리없느 소리들은

가을 들길에 풀어놓지 않는가

나 세상한테 괄시받고 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었을 때

제 풀에 삐쳐서 쪼금은 쓸쓸할 때.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규동] 봄이 오는 소리외 1  (0) 2005.08.16
[이수익] 우울한 샹송외 1편  (0) 2005.08.08
[서정주]漢陽好日  (0) 2005.08.03
[이창대] 하늘 외 3  (0) 2005.07.26
[백석]모닥불 외 1  (0) 2005.07.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