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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비내리는 날

by 발비(發飛) 2005. 6. 10.

 

 

비내리는 날이면, 중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중학교는 나에게 별의미가 없었다. 한 마디로 무지무지 재미가 없었던 시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독 비가 오면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운동장이 떠오르고, 교실이 떠오르고 책상이 떠오른다.

난 중학교 때 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정신연령이 많이 어렸던 듯 싶다.

아이들도 나를 끼워주지 않았고, 나도 재미가 없었다.

아마 나의 혼잣말은 그때부터였지 않았을까? 그러고보니 역사가 깊기는 하군.

다른 아이들이 사춘기니 초경이니 그런 것들을 이야기 할때 나는 그들과 상관이 없었으므로.

난 다만 볼펜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재미있었던 정도였으므로...

어떤 대화에도 낄 수가 없었다. 구경하는 사람이었다.

구경하는 것도 사실 재미가 없었다.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들처럼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이들의 말소리들.. 재잘거림...그리고 웃음소리. 그런 것들은 그냥 환경일 따름이었던 듯 싶다. 그리고 그것들에 무심했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달랐다.

비가 내리면 아이들의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비가 내리면 교실이 울리도록 아이들은 말을 많이 했고, 목소리는 컸고, 뛰는 발소리도

모든 소리들이 확대되었었다.

그럼 난 더 이상 저절로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교실에서 아이들이 말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날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의 자기 남자친구이야기를 했고, 어제 산 옷 이야기를 했고

엄마의 흉을 보았고, 비내리는 날에 아이들의 소리는 나와는 좀 가까웠다.

비내리는 날이면 청소시간에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있었다.

난 밀걸레를 빨러 운동장가에 있는 수돗가로 가면 아이들의 울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교실에서가 아니라 좀 떨어진 곳에서 우리반만이 아닌 우리 학교 아이들의 소리를 한꺼번에 듣는 것. 울렁울렁,,, 마치 배를 탄 듯이 일정한 리듬으로 울렁거리는 소리들..

난 비내리는 날 밀걸레를 빨러 운동장가의 수도로 나갔고 한 동안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는 동안만은 아이들이 나의 친구같았다.

그 울렁거리는 소리 전체가 나에게 말을 거는 듯 가깝게 들렸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난 좀 좋았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사무실너머 지나가는 이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내가 두드리는 자판소리와 비소리와 지나가는 낯선이의 목소리

그 소리들이 어울려 형광등불빛아래 잔잔히 깔린다.

소리가 깔린다.

비내리는 날에는 소리들이 세상을 채운다. 그 울림은 마치 목어의 울림처럼 길고도 끈적인다

커서 알았다. 공기보다는 물의 전달력이 좋다는 것을 ... 그리고 확대되어 들린다는 것을...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항상 사무실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난 사무실 건너 길에 등을 돌리고 있지만, 불과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매일 스쳐지나다녔을 사람들의 소리를 비가 내리는 날이면 듣게 되는 것이다.

나의 10미터 뒤로 매일 스쳐지나갔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오늘 아침 내게 들린다.

세상의 빈 곳을 비로 메꾸어 저들과 나를 이어주는 그런 날이다.

오늘 아침 사람들의 소리가 가깝다....

지금 이길로 밖으로 나가 길 가던 사람을 붙잡고 말을 한다면,

길건너 사무실에서도 내 목소리가 들리겠지. 한 번도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 아침은 왠지 길로 나가서 앞 사무실에서 들리도록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난 중학교를 기억하는 일은 비내리는 날들 뿐이다.

비 내리는 중학교를 혼자서 다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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