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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飛가 그린 그림

[발비그림] 물의 흔적

by 발비(發飛) 2025. 3. 2.

그려지는대로 그리고, 내가 뭘 그린거지.

내가 그린 여자의 머리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돌고래 두머리를 얹혀있다.

나는 돌고래의 몸에서 떨어지는 물인지, 여자가 흘린 눈물인지 모를 짠물이 가득 고인 여자의 눈을 멍하게 쳐다본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비봉 방>이 생각났다. 맥락도 없이 문득 떠올랐다.

몸이 머무르는 곳, 생각이 머무는 곳이 다른, 사람의 외로움, 고독,  거기서 밀려오는 슬픔,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나의 어리석음. 뭐 그런걸까?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그리고 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본래 무엇이었는지를 모를 경우에 하는 말이겠지.

원래 여자가 있었던 곳을 가늠하게 하는 돌고래와 물, 

둘 다 수면 위에서 황당하게 있다. 백석처럼.

원래의 정체성을 가진 그곳에 산다는 것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 백석은 남신의주 유동의 박비봉이라는 목수의 집 어느 방에서 기약없이, 할 일 없이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신세한탄을 하며 대체 이게 뭔가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여자처럼, 나처럼.

 

어디에 있어야 하나. 

어리석다. 

내 안에는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분명 사는 듯.

그러니 어리석지. 큭 하고 웃지 뭐

 

 

남신의주 유동 박비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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