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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집사 식물집사

[쟝 그르니에] 섬

by 발비(發飛) 2023. 1. 12.

동물에 대한 글 중 마음 속 1등은 쟝 그르니에의 [섬]에 등장하는 고양이 물루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쟝 그르니에의 글 중에서도 물루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너무 좋다. 

고양이 '물루'때문에 오래된 청하출판사 버전인 이 책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동물과의 밀접한 동거를 시작하며, 물루가 생각났다. 

나는 '감자'를 관찰하고, '감자'는 나를 관찰한다. 

 

동물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동물들이 잠자듯 엎드려 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그들이 그렇게 엎드려 있을 때. 대자연과 다시 만나고 그들의 몸을 내맡김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을 키워주는 정기를 받는다. 우리가 노동에 열중하듯이 그들은 휴식에 그렇게 열중한다. 우리가 첫사랑에 빠지듯이 그들은 깊은 신뢰로 잠 속에 빠져든다. -쟝 그르니에 [섬, 고양이 물루] 중에서

'감자'가 밤새 어떤 포즈로 자는 지는 알 수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니까, 어느 날은 깊은 잠을, 어느 날을 자다깨다를 반복하는 것 같다. 불은 끈 밤에 감자가 무엇을 하던 나는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여섯시에 일어나 두시간 가까이 밥먹고, 놀면서도 내가 책상에 앉기를 기다린다. 

'언제 책상에 앉을 건데?'

내가 눈치를 보며 커피를 내리고 빵을 챙겨서 책상에 앉으면 옳다구나 하고 제 자리에 가서 잠을 청한다.

그리고 몇 번 몸을 움직여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고는 깊은 잠에 빠진다.

'우리가 노동에 집중하듯 그들은 휴식에 그렇게 집중한다'

'그들은 깊은 신뢰로 잠 속에 빠져든다.

이런 잠, 이런 신뢰가 우리들에게도 허락될 것인지. 

처음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를 읽었을 때, 내가 가졌던 생각.

그르니에는 고양이를 흠모하고 있다는, 지향하고 있다는 느낌은 이들의 휴식과 신뢰가 아니었나 싶다.

 

 

감자가 자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강제 책상이다. 

저 잠이 스스로 충분할 때까지 타자에 의해 깨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감자가 충분히 자길 바란다. 

 

물루는 행복하다. 세상이 영원히 제 자신과 벌이는 싸움에 끼어들면서도, 그는 자신을 행동하게 하는 그 환상을 깨뜨리지 않는다. 그는 장난을 즐기지만 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것은 나다. 한 치의 빈틈도 남기지 않고 정확한 몸짓으로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을 보고있으면 내 마음은 그만 황홀해진다. 매순간 그는 제 행동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다. -쟝 그르니에 [섬, 고양이 물루] 중에서

고양이와 개는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양이는 사람을 길들이고, 사람은 개를 길들인다. 길들이고야 만다. 

나는 개취향이다.

나는 부비고, 부대끼고, 스치길 좋아한다. 

감자가 아침에 일어나 모닝뽀뽀를 퍼부을 때,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을 줘 본 적이 있나 싶다. 

참아본 적이 있나 싶다. 

오직 감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자기와 유일하게 함께 할,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은 나에게 집중을 한다. 

제 3자, 바깥세상은 없다. 

우리끼리의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둘은 서로가 설정한 인물로 레고처럼 맞춰질 것이다. 

 

함께 사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미래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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