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떠나지 않은 오스카와일드. 전자책으로 한 권, 종이책으로 한 권을 주문했다.
엉켰다. 나의 무질서와 대한민국의 무질서와 나의 무력함과 대한민국의 무력함, 엄마의 뱃속에 든 아이처럼 온전히 지배받으며 엉켜버렸다.
오늘 내 말은 특별히 더 뒤죽박죽일 것이다. 마치 행위예술처럼 보는 글처럼, 모든 것은 지금 마구 엉켜 있어야 정상이다.
1.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수치심을 느끼게 한 대통령, 그리고 너에게 혹은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
"가장 공정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가 아닌 '우리 죄를 벌하시고'가 되어야 했다."
역시 오스카 와일드다.
"죄는 사람의 얼굴에 저절로 드러나는 법이지. 감출 수가 없어. 하지만 잘못과 악행의 흔적까지 모두 짊어질 초상화가 있어. 어때, 그 그림을 갖는 대신 기꺼이 영혼을 팔겠는가?"
2. 2년 전 파리에서 그를 찾아 갔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전에 들른 파리에서 하루의 시간을 내어 파리 20구에 있는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을 찾아갔었다.
3월이었으므로 꽤 추운 날씨에 마레지구 유니클로에 들러 패딩을 하나 사 입고 구글 지도에 의지해 걸어 걸어, 헤매면서 천천히 그곳까지 갔다. 엄청 큰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서도 우연히 쇼팽의 묘지를 찾았으나, 오스카와일드의 묘지는 한참 만에 만났다.
북유럽 영화에서 나오는 듯한 가출한 여고생같은 대여섯명의 무리들이 아니었다면 더 헤맸을지도 모른다. 그애들은 맞춰나 입은 듯이 검은 가죽점퍼에 짙은 아이라인, 얼굴 여기저기의 피어싱, 그렇게 사나운? 모습을 하고 오스카와일드의 묘지 앞에서 한참을 놀았다. 그 중 한 명은 오스카와이드의 묘에 편지를 밀어넣었다. 그들이 가고 난 뒤, 슬쩍 본 편지에는 I'm missing you!!
너무 많은 여자들이 죽은 그를 사랑하여 그의 묘비에 키스마크를 남기는 바람에 묘비가 남아나질 않아 유리벽을 세웠다고 했다. 투명한 유리벽 여기저기에 키스마크가 남아있다. 관리자들이 하루에 한 번씩 닦는다고 했다. 나도 그 아이들처럼 어떤 그리움으로 그곳에 갔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쓴 옥중록을 읽으면서, 삶을 체념한 듯 쓴, 그의 글에서 나는 힘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에너지의 근원을 찾아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형식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플라톤도 말했던 것처럼 춤의 율동적이고 조화로운 몸짓은 무리 마음 속에 리듬과 조화를 전달해준다.
사람들이 교리를 신봉하는 건, 그것이 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반복해서 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형식은 곧 모든 것이다.
삶의 비밀이 거기에 있다.
슬픔에 어울리는 표현을 찾아보라. 그럼 슬픔조차 당신에게 소중한 것이 될테니까.
기쁨을 위한 표현을 찾아보라. 그러면 그 희열이 배가 될 것이다.
사랑이 하고 싶은가? 사랑의 길고 긴 기도를 써 보라.
그럼 그 말들이 사랑의 열망을 생겨나게 해 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열망으로부터 말들이 생겨났다고 믿겠지만."
- <오스카리아나> 중에서, 오스카 와일드
3.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을 보다가 다 보지 못했고, 박효신이 나오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첫부분을 보지 못했고, <판타스틱 듀오>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야구때문에 결방이었고..., 우유를 데워 먹고, 자고, 우유를 데워 먹고 자고, 일년에 한 통도 안 먹는 우유를 이틀에 다 먹었다. 사실 최근에는 잠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잠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잠만 잤다.
지난 주말 48시간 중에 직립을 한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일 것이다.
주말이라면 주말답게 잠을 자야지, 라는 의식도 없이, 의식없이 그냥 누워있었다. 다행인 것은 별로 먹지도 않아서 몸이 붓지는 않았다.
쉬는 일이 바깥으로 탈출하고, 초록을 보고 시원한 바다소리를 듣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금요일 밤이면 배낭을 싸서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정신건강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보다는 지금이 좀 더 건강한 편인데, 그때가 더 건강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누워있었다.
그런데 절대로 좋아지지 않을 것 같은 몸이 좋아졌다. 거의 3,4주만에 가장 쾌청한 몸이 되었다.
사람들이 교리를 신봉하는 건, 그것이 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반복해서 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형식은 곧 모든 것이다.
삶의 비밀이 거기에 있다.
형식이 중요한 것은 반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형식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반복 불가능하므로 지속 또한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 잠은 형식 혹은 질서가 불가능해진 내 삶에 형식을 부여하기 위한 긴 정제작업 같은 거였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출장을 전후로 몸이 미치도록 망가져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3주를 버텼고,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갈 궁리를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 같은 고통과 무감각을 경험했다.
내가 마주한 것은 도리언 그레이가 마주했던 자신의 초상화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즉시 확실한 벌이 내려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벌을 받았더라면 영혼은 정화되었을 텐데. 가장 공정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가 아닌 '우리 죄를 벌하시고'가 되어야 했다."
깊고 긴 잠을 내처 잔 후, 나는 지금의 일상성이 받아들여지지 시작했다.
오스카 와일드, <옥중록>을 읽었던 그때처럼,
그가 먼저 온 것인지, 내가 그를 찾은 것인지, 사막을 건너는 목 마른 자에게 물의 냄새가 건너오듯 그와 그의 말과 그를 찾았던 내 기억이 동시에 떠오른다. 오늘, 마지막인 그의 말을 새겨듣는다.
사랑이 하고 싶은가? 사랑의 길고 긴 기도를 써 보라.
그럼 그 말들이 사랑의 열망을 생겨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한동안 진정한 사랑에 대단히 인색했음을 그리하여 황폐해졌음을, 망가졌음을, 자각한다.
길고 긴 기도를 써보리라, 언젠가처럼 '지금 너에게'를 이어가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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