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리려놓고 가는 것; 그 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곃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이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문학과 지성사 ,1998
폐허를 본다는 것,
나의 흔적과 그의 흔적이 어딘가 흩어져 있는 폐허를 본다는 것
그것보다 가슴을 텅 비게 하는 일이 있을까?
빈 가슴을 휘돌아 부는 쌩한 바람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
바람이 가슴을 지나 목구멍으로 소용돌이 치는 것을 느낀다는 것
뻣뻣해오는 목구멍을 힘주어 삼키는 일보다 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까?
엉엉 소리내어 울수도 없는,
사랑한 사람과 함께 있었던 폐허를 손에 쥐고 있는.열대야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지난 밤,
나는 후회할 것을 뻔히 알면서 그 자리를 하나 하나 천천히 지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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