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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황지우] 뼈 아픈 후회

by 발비(發飛) 2015. 8. 7.

뼈 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리려놓고 가는 것; 그 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곃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이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문학과 지성사 ,1998

 

폐허를 본다는 것,

나의 흔적과 그의 흔적이 어딘가 흩어져 있는 폐허를 본다는 것

그것보다 가슴을 텅 비게 하는 일이 있을까?

 

빈 가슴을 휘돌아 부는 쌩한 바람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

바람이 가슴을 지나 목구멍으로 소용돌이 치는 것을 느낀다는 것

뻣뻣해오는 목구멍을 힘주어 삼키는 일보다 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까?

 

엉 소리내어 울수도 없는,

사랑한 사람과 함께 있었던 폐허를 손에 쥐고 있는.열대야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지난 밤,

는 후회할 것을 뻔히 알면서 그 자리를 하나 하나 천천히 지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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