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난 첫 번째 생각, 다행이다.
이성애자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에게 한 없이 애잔한 마음을 보낸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대상과 사랑을 하게 된다.
그 사랑은 어느 때는 대단하고, 어느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치사하고 치졸하다.
또 어느 때는 순순하기 그지 없다가, 또 어느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계산적이다.
그것이 이성애든 동성애든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성애자라면 도드라보이지 않았을 끌림에 대해 생각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끌림, 그것이 사랑이다.
그 끌림은 궁극은 섹스로 이어진다.
여러 기사에서 난 것처럼 이 영화에는 당연 19금이어야 마땅할 섹스신이 전체신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동성애자가 아니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들의 사랑을 나눔은 궁극인 듯 했다.
끝없는 미로 끝에서 미로를 찾아 헤매는 몸부림같았다.
절정도 쾌락도 모두 인색한 사랑.
미로의 끝은 경우 담을 뚫고 들어오는 가느다란 불빛같이 위태롭기만 하다.
그것에 온 마음과 몸을 다하는 그들을 보면서,
오직 끌림만으로 포착한 서로에게 집중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안도했다.
나는 적어도 그들은 아니다.
내 사랑은 적어도 저 모습은 아니다.
그렇지만 말이다.
....
모습이 그렇지 않다는 것, 그것이 사랑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170분의 긴 러닝타임 끝의 마지막 장면,
아델이 잊지 못하는 엠마의 전시회,
아델로서는 근접하지 못하는 엠마의 세상, 하지만 엠마의 세상안에 있고 싶어하는 간절한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눈물은 드러내지도 못한다.
사랑의 비열함이다.
사랑은 절대 무조건적이지 않다.
전시회를 뒤로 하고 파란 미니 원피스를 입고 걸어가는 뒷모습,
아델을 따라나가는
여자를 사랑한 것은 엠마가 처음이니? 물었던 남자...
아델,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성장시킬만한 어마어마한 큰 사건을 가지고 있다.
아델이 특별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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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정오 [그렇게 아빠가 된다]에 이어 15분 휴식 후 바로 본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니, 장장 여섯시간이 지났다.
분명 6시간 동안 나는 나로서 산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어느 곳에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없는 세상에서 머물렀다.
구토와 함께 복잡하게 엉켰던 머리가 가지런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남은 토요일밤과 일요일 내내 나는 오직 노동을 위해 모자를 뜨고, 손바느질로 몇 개의 옷을 리폼했다.
노동은 언제나 머리속을 가지런히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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