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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아버지의 달구질

by 발비(發飛) 2009. 2. 13.

지난 주말에 큰어머니께서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토요일 대구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고,

일요일에는 선산이 있는 안동으로 갔다.

 

아버지는 편찮으시다.

말씀이 조금 어눌하시고, 몸을 쓰시는 것이 불편하신데도 장지까지 오셨다.

겨울날씨치고는 제법 포근해서 말리지도 못하였고,

큰어머니의 가시는 길을 보시지 못한다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묵직한 덩어리로 남을 듯하여

산에서 내내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많이 움직이시지는 못하게 말렸었다.

 

친척들도 많이 왔고.

사촌오빠, 사촌언니 그리고 그들의 배필들, 그들의 아이들..

큰아버지와 아버지의 나이차이가 거의 부모자식지간인 까닭에 조카들까지 모두 성인이다.

 

우리 집안으로서는 거의 35년전 큰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후로 처음 있는 초상이라...

경험한 이가 없다고 봐야한다.

 

우리보다 미리 도착한 상두꾼(상여를 매지는 않지만 봉분을 다지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니..)

입관을 하고

횟가루를 하얗게 뿌린 뒤,

사촌오빠들과 언니들이 삽으로 흙을 퍼 세 번에 나눠 관 위에 뿌리고...

 

이제 상두꾼들의 달구질과 함께 회다지 소리가 이어졌다.

봉분의 가운데가 될 자리에 길고 큰 나무 막대를 세우고

거기에 하얀 새끼줄을 매달아놓았다.

상두꾼들의 회다지 소리가 ..... 스멀스멀 들려온다.

친척할아버지 중에 한 분이 소리가 작다고 호통을 치셨다.

 

수백바퀴는 돈 듯 싶을 즈음,

봉분의 한켜가 완성이 되고 다음 켜를 위해 흙을 다지고 다시 상두꾼들이 봉분 위로 올라갈 즈음

갑자기, 아버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내게 봉분을 향해 손짓을 하신다.

가실거라는 이야기다.

 

큰어머니의 봉분자리는 우리들이 있던 곳보다 한 층 더 위, 35년전 미리 자리를 잡으신 큰아버지의 봉과 합장을 할 터라

경사가 제법 있는 곳이었다.

 

안된다고 손을 끌었다.

손짓으로도 강력한 의지를 표하신다.

다른 친척들은 모두 그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시간인데...

 

난 할 수 없이 아버지를 부축해서 상두꾼들이 있는 묘자리로 갔다.

아버지가 봉 위로 올라가시려 한다.

난 또 말렸다.

손을 끄신다.

아버지와 나는 묘 위로 올라갔다.

 

그때, 아버지의 회다지 소리를 들었다.

......에헤 달구~

......에헤 달구~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회다지 소리.

자꾸 눈물이 났다. 다리를 절룩거리시면서 달구지를 하시는 모습.

......에헤 달구~~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지갑속의 돈을 꺼내셔서 하얀 새끼줄에 넣으라고 하신다.

상두꾼이 돈을 하얀 새끼줄에 꽂았다.

 

그때, 좀 아래에 있던 사촌언니들의 형부들과 조카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검은 상복을 입고는 어쩔 줄 몰라하던 스무살부터 서른 살까지의 조카들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 제 할머니의 묘자리에 달구질을 한다.

그 아이들도 ......에헤 달구~~를 했다.

이상하게도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큰어머니의 연세는 90에 가까워 호상이라 그럴 수 있겠지만,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

다른 곳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가는 이에게만은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형부들과 조카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내게 내려가자는 손짓을 하셨다.

아버지는 조심히 조심히 그 곳을 내려와 다시 자리에 앉으시고는 달구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신다.

이제는 되었다는 표정이시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내가 감동받았던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 오늘 아버지  본 중에 최고로 멋있어요.

아버지 따라서 애들이 올라가는데.. 정말 멋있었다니까요!"

그러면서 구구절절 오늘 감동 받았던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진짜 내가 태어나서 아버지를 본 이후 최고로 멋있는 날이었다.

 

그 이유는 참 복합적일 것 같다.

 

삶에 관한 문제니까...

죽음에 관한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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