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문정희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 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나 오늘
세상의 찬밥이 되어
어제는 사방을 쫓아다녔고, 오늘은 어제의 일들을 결과물로 만들고 있는 중이며,
또한 누군가가 벌려놓은 일을 마무리하느라 종일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이것 또한 칩거!
비가 오네.
비가 온다.
사무실을 들고 나는 사람들이 모두 축축한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봐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오늘 보지는 못했지만, 우산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은 만났다.
점심시간에도 죽치고 앉아있다보니,
누군가 부른다, 혹 도시락 시키시겠어요?
그럴께요,
하고 돈까스 도시락을 먹는다.
밥에서 딸그락 소리가 나는지도 처음 알았고, 돈까스에서도 딸그락 소리가 나는지도 처음 알았고...
비가 오는데 마른 도시락을 먹는다.
시인은 아픈 몸으로 찬밥을 먹으며 어느 옛날 자신을 가장 아끼며 돌보던 한 사람을 생각한다.
아픈 몸으로 시간에 머문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일을 만든다.
몸이 아파오고 열이 나기 시작하면 몸에서는 그리움을 생산한다.
잊혀진 시간 중 언젠가를 재생산하는 것, 그것이 아픔이다.
되새김질하는 기억의 대부분은 아픔이지...
그건 그 때는 행복했더라도 지금은 아픈 것이고
그때 아프던 것도 지금 아픈 것이고,
고통지향성 동물....
며칠전 누군가 말하더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도, 여행을 같이 다녀온 사람들과 함께 만나도,
마치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은 듯 아무 것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않는 내가 답답해하였더니...
그러더라.
그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한가보지!
행복한 시간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거야!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때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아무 생각없이 밥을 먹고, 밥을 소화시키다가...
비가 오고, 함께 밥을 나누어 먹던 파트너가 없으니 갑자기 아파오는 시간이 되더라.
뭐 그런 걸 아파하느냐고 ...
요즘 아프지 않았나보지. 스스로 되뇌이면서 꼭꼭 씹어 밥을 삼킨 날이다.
찬밥 한덩이이가 그리움이 되고, 아픔이 되고... 그 날 세상의 찬밥이고 까칠한 밥이다가도,
배고픈 어느날 열무김치에 고추장을 비벼먹으면 그보다 더 꿀맛이 없으니.. 이건 또 무슨 혼선인지..
비가 와서 궁시렁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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