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1.
그저께, 난 남이섬에 있었고 핸펀의 밧데리는 아웃상태였다.
2.
저녁에 집에 돌아와 충전기를 바꿔넣자 문자가 들어왔다.
제주친구가 서울에 왔다는..... 이미 서울을 떠나 일산이라는.
그럼 내일밤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약속.
퇴근 후 교육 받는 곳 근처에서 대기했다.
그 친구의 핸펀이 꺼져있단다. 교육중이니까.... 기다림. 기다림.
8시부터 밤 11시까지... 그 사이 나의 핸펀은 또 밧데리 아웃!
편의점 급속충전 후 기다림.
11시가 넘고서야 전철을 타고 집으로
다시 기다림.
.
.
다른 기다림.
3.
다른 기다림.
통화를 하다 끊어지면, 안녕하고 인사를 하지 못하고 끊어지면
마치 통화를 계속하는 듯
핸펀을 보게 되는데... 뭔가 남은 것이 있는 듯
안녕 하고 인사를 해야하는데.
전철에서 조용히 왁스 6집을 듣다가 제주친구의 기다림 속에 핸펀 끊어진 친구의 기다림까지 포함되었다는. 걸 알았다.
4.
두 기다림이 큰 원 안에 작은 원처럼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부풀고 가라앉는다.
5.
기다림은 때로 삶을 한없이 긴장시키고 때로는 삶을 한없이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것은 확신!
기다림의 끝이 만남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는 혹은 당위성을 가질 때는,
마치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처럼 아주 멀어지는 듯 싶지만 순식간에 만남을 끌어안고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남에 대한 확신이나 당위성보다는 막연한 희망이라면,
이건 엄마가 이불 꿰매는 데 쓰는 무명실처럼 길게 풀어지면 풀어질수록 엉키고 마는 것이다. 언젠가는 끊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6.
언젠가는 잘 기다리는 것을 자랑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말할 때는 아마 '나 기다릴테니 넌 꼭 와" 하는 거였겠지.
7.
참 많이 기다렸구나. 살면서 내내 기다린 시간만 계산한다면 삶의 90정도는 모두 기다림일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그 보다 더 오랜 시간, 기다림.....
다시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내 영혼의 불안함, 좌불안석은 온통 기다리는 삶을 산 때문이 아닌가 하며
마구 한쪽 끝으로 달려본다.
8.
하루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12시 몇 분.
9.
잠을 청하면서 양떼를 생각했다.
맨 마지막 양을 기다리며 셀 수 없이 많은 양떼를 가졌다. 눈을 감은 채 웃어버렸다.
다행이다. 예수님이 아니어서.... 난 찾아가지는 않는다. 기다릴 뿐이다.
10.
다시 아침.
기다렸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쩌지....
오늘 오후 비행기, "어떻게하면 볼 수 있을까?"
이젠 기다림은 끝났다.
왜?
비행기 시간이 정해졌으므로.
그래! 바로 그거야.
표를 끊어야 하는거다.
어쩌지 못하게 기다림의 고개마다 미리 표를 끊어버리는거야. 표는 정해진 시간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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