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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복효근] 눈 오는 날 콩나물국밥집에서

by 발비(發飛) 2006. 12. 6.

 

눈오는 날 국밥집에서

 

복효근

 

눈이 뿌리기 시작하자

나는 콩나물국밥집에서 혼자 앉아

국밥을 먹는다 입을 데는 줄도 모르고

시들어버린 악보 같은 노란 콩나물 건더기를 밀어넣으며

이제 아무도 그립지도 않을 나인데

낼모레면 내 나이가 사십이고

밖에는 눈이 내린다 이런 날은

돈을 빌려달라는 놈이라도 만났으면 싶기도 해서

다만 나는 콩나물이 덜 익어 비릿하다고 투정할 뿐

자꾸 눈이 내리고

탕진해버린 시간들을 보상하라고

먼 데서 오는 빚쟁이처럼

가슴 후비며 어쩌자고 눈은 내리고

국밥 한 그릇이 희망일 수 있었던

술이 깨고 술 속이 풀려야 할 이유가 있던

그 아픈 푸른 시간들이 다시 오는 것이냐

눈송이 몇 개가 불을 지펴놓는

새벽 콩나물국밥집에서 풋눈을 맞던 기억으로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그 설레임으로

심장은 뛸 수 있을까 사십에

그까짓 눈에 속아

입천장을 데어가며 시든 콩나물 악보를 밀어넣는다

 

눈이 내리지도 않았고,

콩나물해장국도 먹지 않았다.

 

전인권의 '새야'를 들으며 눈이 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엠피 귀에 꽂고 '새야'를 들으며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다.

시인처럼 입천정 데어가며 긴 콩나물 줄기 버적버적 씹었으면...

입보다 더 큰 숟가락으로 국물 연신 떠올렸으면...

그래,

이럴땐 빚쟁이라도 좋아.

앞에 누군가 앉아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하겠지.

그렇지만, 혼자인게 더 나아... 원래 바램이나 희망은 그 자체로 새우젓쯤은 될테니. 그저 생각만 하는거지.

 

시인은 아픈 시간이  다시 오냐고. 가슴이 다시 왜 패이도록 아프냐고 묻는다.

불혹이라는 사십인데 왜 아프냐고.

심장은 다시 뛸 지 안 뛸지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데 아프긴 왜 아프냐고

어쩌자고 눈 내리는 새벽에 쓰리냐고.

눈 내리는데 내가 왜 쓰리냐고.... 시인이 그런다.

 

지금 눈도 내리지 않고 콩나물국밥도 없다.

시인은 불혹인데 왜 쓰리냐 아프냐 ... 그러지만, 난 눈도 내리지 않는데, 국밥도 없는데.

시인처럼 새벽 국밥집에 앉아 내리는 눈을 보면서 왜? 왜? 그러고 싶으니.

 

눈내렸으면,

그런 새벽에 내가 거리에 있었으면

하얗게 눈이 쌓이는 길을 아주 오래 걸어서 의정부쯤까지 걸어서 비닐포장쳐진 국밥집 찾아 갔으면

그때도 전인권의 '새야'를 듣고 있었으면

그 길을 다녀오고 나선 말할 것이다.

 

이제 불혹이야.

정말 불혹이네.

덤벼봐. 내가 넘어가나 덤벼봐.

 

공자님이 그러셨거든, 不惑이라고.

나이를 말하는 지학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고희.....뭐 그런 것들 중에 불혹이 가장 되고 싶었다.

내내 기다렸다. 시간이 가기를.....

 

눈 내리는 날 콩나물국밥 한그릇 먹고 나면 진정 불혹일 수 있을 듯 한데......

시인이 그려낸 베스트극장 연말특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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