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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2

[일기] 적당한 밥 눈을 뜨자마자 홀린듯 밥을 했다.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밥이 떨어진 것을 어제 알았고, 십년 넘게 이십년 가까이 냉동실에 늘 얼려둔 밥이 있었던 탓인지 모른다. 늘 있었던 것은 있어야 했나보다. 2주전 안동에 다녀오면서 엄마가 주신 햇쌀과 친구가 준 완두콩을 섞어 밥을 했다. 아주 오랫동안 언제 만들어졌는지, 땅에서 나온 건지 공장에서 나온 건지 느낌조차 없었던 잡곡밥이 아니라 낯설었다. 설레기도 했다. 올 가을까지 땅에 뿌리를 내고, 햇살을 잎으로 받으며 여물었을 생명. 냉동실에 얼려둔 시래기(이것도 친구가 준 거)로는 쌀뜨물을 뽀얗게 받아 심심하게 된장국을 끓이고, 지난 여름 끝 정선 여행 중 시장에서 산 참나물은 참기름을 듬뿍 넣고 볶았다. 완두콩밥은 4인분을 해서 여섯개의 그릇에 나눠 냉동실에 넣고.. 2021. 10. 29.
안개의 어둠이라는 것 환한 어둠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자유로를 달렸다. 캄캄한 정도는 아니었기에 자동으로 설정해 둔 안개등이 켜지지 않아 수동으로 안개등을 켰다. 그만큼 어둡지 않았다. 안 보일 뿐이었다. 안개 속이 보이지 않는다고 어둠은 아니다. 불투명한 밝음. 18년 동안 쓴 전기밥솥을 바꿨다. 새로 산 밥솥으로 밥을 했다. 밥은 고소하고 찰졌다. 일요일이었던 어제는 그 밥을 두번이나 먹었다. 밥이라는 것이, 밥맛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얗고 기름진 밥을 먹으니 힘이 났다. 밥을 먹기 싫어한 것은 밥이 아니라, 밥을 잘 짓지 못하는 밥솥이던가 나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둠과 관련된 캄캄함이 아니라 환하고 확연한 것인데도 보지 못한 것이다. 저 먼데를 보려면 보이지 않지만, 내 발밑은 환한데 말이다. .. 2020.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