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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동대문벼룩시장

by 발비(發飛) 2006. 4. 13.

 

 

갑자기 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것이 사람이기도 하고, 물건이기도 하고, 장소이기도 하다.

어젠 영화가 아니라, 북적거리는 사람을 원했던 듯 싶다.

봄날이니까......

 

동대문 운동장안에 있는 벼룩시장이다.

황학동에서 옮기고 나서 난 이 곳을 즐겨찾는다.

한 곳에 몰려있으니까, 일단 다니긴 편하다.

작년 봄엔 거의 토요일마다 이 곳을 배회했었는데.....

그 땐 사람들이 무지 많았고, 점포수도 무지 많아서 복작복작 그랬는데.....

 

어젠 포장을 덮어둔 곳도 많았고,

벼룩시장의 물건들이 예전처럼 재미있지가 않은 듯 해서 좀은 섭섭.

그래도 말이다.

사람들의 흔적이 묻어있는 물건들을 보면 맘이 동한다.

누구나 같은 삶을 사는 것이지 싶고

누구나 삶의 흔적은 남기지 싶고

누구나 그 흔적이 증거가 되지 싶고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흔적을 보면... 사는 게 뭐 그런거지 싶고.

 

티벳승과 몇 번을 마주치고 부딪혔다.

그 분들은 작은 가방을 고르고 계셨는데, 가격이 맘에 안드시는 건지 물건이 맘에 안드시는 건지

한 바퀼 다 도는 내내 가방만 골랐다.

사시기는 하셨을까?

통역해 주시는 분이 그리 친절한 것 같지 않던데....

 

휙 지나치면서 부딪힌 눈빛!

이렇게 말하면 죄송하려나.. 그런데 ...

난 이방인의 눈을 보면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의 눈빛이 생각난다.

눈길을 약간은 아래로 내리깔며, 그렇지만 끊임없이 살피는 고양이의 눈빛을 닮았다.

고양이를 길에서 만나면 내가 눈을 피해 버리듯,

휙 지나치면서 부딪힌 눈빛을 얼른 피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 곳에 오면 하고 싶으면서도 하진 못했던 것.

밥 먹는 거.

동대문 벼룩시장안 먹자길은 아침이나 낮이나 사람들이 많다.

평균연령 65세 이상이다.

그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혼자!

 

배가 너무 고프다.

갑자기 필 받아서 튀어나오느라 밥도 못 먹었다. 밥이 보고 싶었다.

 

보리비비밥.

헉! 이렇게 많이 주다니... 수북히 가져오는 밥그릇을 보고 덜어달라고 말할 뻔 했다.

그냥 남기지 뭐, 하면서 쓱쓱 비빈다.

역시 보리밥은 잘 흩어져!

숟가락에 힘을 줄 필요도 없이, 갖다대기만하면 해산이다.

 

"맛있다!"

"덜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들이 그저께 돌아가신 신상옥 감독이야기를 하는라 분주하다.

신상옥 감독의 아들을 최은희가 낳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내가 밥 한 그릇을 다 먹을동안 주제로 삼고 계셨다.

그런데 결론은 ....

사람은 늙어서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끝을 내시더라.

 

가끔 밥 먹은 나를 힐끗거리며, 막걸리 두 병을 비우시더니... 가셨다.

 

 

진정 부처님이시옵니까?

여기 계시옵니까?

 

동대문 벼룩시장 가운데 골목 좌판 아래쪽에 뭇 사람과 짐승들 사이에서 계셨다.

가늘게 뜬 눈으로 세상을 보는 듯, 주무시는 듯,

그 방향이라면 지나가는 사람들 발만 보이실터인데,,, 꼼짝않고 계셨다.

참 평화로운 모습이셨다.

모시고 오고 싶었는데....

2만 5천원이란다. 그래서 그냥 뒀다.

 

부처님께서 그 곳에서 몸을 팔고 계신거다.

 

 

ㅎㅎㅎ,

"노으스페이"

설명필요없는 제품이란다.

 

설명이 필요없었다.

 

 

 

 

기념품이다.

스푼 포크 나이프 3종셋트 5000원, 컵 2000원, 가방 5000원

 

가방.........................

앞은 저래도 뒤는 다 떨어졌다.

완전 유물에 가깝다. 1945년이란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에 참전한 어느 미군의 가방?

전쟁을 치른 가방이 분명하다. 그 몰골이 온몸으로 전쟁을 가방 그대로였다/

안감은 완전 삭아서 우수수 떨어졌다.

왜, 데리고 왔지.

그냥 데리고 오고 싶었지.

나오다 동평화시장에 들러 꽃무늬 화려한 천을 한 마 사가지고 왔다.

꽃피는 안감 넣어주려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가방으로 갖고 다니고 싶다.

마치 역사의 인물이 된 듯이 저 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다.

 

 

2시간 30분 정도의 투어였었다.

해야 할 일을 한 날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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