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문학전집 6.
젊은 시인의 상상세계/ 말들의 풍경
그 중 최승자시인의 시평론에 일단 책을 갈랐다.
최승자시인의 세권의 시집을 통틀어서 김현님이 평론을 하셨다.
세권의 시집을 다 읽지 않았지만, 그 분이 골라놓은 최승자 시인의 시를 그대로 쫓아가려한다.
일단은 시 부분을 모두 두드려놓고, 맘대로 댓구를 해본다.
내 속의 내가 최승자시인의 시에 어떻게 대답을 하고,
김현님이 골라 놓은 시에 어떤 반응을 보일런지, 난 나를 손에 다시 맡긴다.
그저 손이 두드린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1;13
떨어지는 유성에 한 눈을 팔면 어쩔거냐?
동그란 밤하늘, 가장 높은 데서부터 하늘모양으로 떨어지는 유성에 눈길을 주면 어쩔거냐?
소원을 빈다. 그 사이 유성은 사라지고 만다.
나 아직 소원을 다 말하지 못했는데, 사라지고 만다.
속으로 생각하지.
아니야 들었을거야. 다 듣고 간 것일거야.
나의 소원을 아는 단 한 사람이다. 내가 너에게 소원을 말했는데 너가 모를리 없어.
난 너에게 나의 소망을 얹었다.
여운도 남기지 않고 가버렸지만, 보이지 않는 너는 아직도 내 소원을 듣고 있을 거라고
그럴거라고, 내 소망을 너에게 얹는다.
밤이면 내 소망 듣고 다시 찾아올 널 맞으러 어둔 하늘아래 서 있다.
시인을 흔들어주고 싶다. 시인은 제 목에 목끈을 메었다.
가려고만 하는 시인자신에게 목끈을 메어두고, 가고 있는 자신을 붙든다.
치매에 걸린 환자가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때
자신의 요아래 비닐포장을 하듯이
자신의 발목과 방문고리에 끈을 묶어두듯이
자신을 단도리해버린다.
나도 그런다.
짤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1;36
죽어도 좋아.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죽어도 좋은 사랑의 감정을......, 사랑이라는 감정은 팔 다리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사지가 다 없어져도 그 잔인한 기쁨은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니까
잔인한 기쁨,
지독히도 잔인한 아픈 기쁨은 온 몸을 거세당하고도 바꿀만한 한 순간을 내게 준다.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물에 풀리는 알콜처럼
알콜에 엉키는 니코틴처럼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네게로 가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균처럼
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1;17
도대체 이 시인은 왜 그러는거지?
뭐가 그리 아픈거야?
정말 그리 아픈거야?
이렇게 아픈데, 아직도 사랑을 하는거야?
그만하지. 그만하면 안돼?
언제까지 하면 그만두는 건데?
끝은 있는거니?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하나...... 사랑, 언제까지 이 굿판을 벌려야 하는거지.
그만하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1;48
청춘.
나 지금 청춘이니? 이렇게 내 친구들에게 묻는다면, 분명 내 친구들은 이야기 할 것이다.
"야! 정신차려. 너 언제 철들래. "
시인의 말처럼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이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이라면,
난 분명 청춘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쭉 청춘이다.
시인이 나를 기쁘게 해준다.
그런데 청춘이 뭐지?
땅거미질 무렵
길고 긴 울음 끝에
공복의 술 몇 잔
불현듯 낄낄거리며 떠오르는 사랑,
그리움의 아수라장-1;18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감히 고백하지만, 우리집 계보가 그렇다고 우긴다.
또 하나의 나를 보는 즐거움이 술에 있다.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할 때 술을 마시면, 난 기분이 좋아진다.
누구는 술버릇이 잘 들어서 그렇다는데, 난 술을 마시면 신이 난다.
평소 모습이랑 술을 마신 모습이 좀 다르다.
가끔 그런 나를 만나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두번 마시는 술이 그렇지 않은 많은 날들을 꿀꿀하게 하니까...
한 달에 한 두번 마시는 술이 전화번호를 검색하게 하니까...
"나 잘하고 있어요." 하고 말할 사람을 찾게 되니까...
난 아버지 덕분에 술버릇이 잘 들었고,
아버지는 술버릇 잘 든 딸 때문에 술 마신 딸의 목소리를 항상 들어야 한다.
난 술을 마시면, 내게 술을 가르쳐준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것도 사랑이고, 그리움이다.
물러서라!
나의 외로움은 장전되어 있다
하하, 그러나 필경은 아무도
오지 않은 길목에서
녹슨 내 외로움의 총구는
끝끝내 나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1;66
내가 가진 총은 항상 나를 겨누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단 한번도 남을 향해 쏘아 본 적이 없다.
나의 총알,그것은 시인이 말한 청춘의 트라이 앵글일 것이다.
나를 향해 내가 쏘는 나의 총구,
어릴때부터 성당을 다니며, 미사를 드릴 때, 난 세 번 가슴을 쳤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탓이오."
세번의 말을 일주일에 한 번씩 , 그러니깐 일년에 몇 번씩을 했을까?
내게 입버릇처럼 남아, 어떤 상황에서든지 절로 내탓이오! 하고 자복을 한다.
이 자복은 때로 거짓이기도 하고, 때로 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난 항상 "내탓이오"하고 고백하고 그 벌로 총구를 내게 쏜다. 그럼 청춘의 트라이앵글 중 하나가 내 가슴에 와서 박힌다.
항상 그랬다.
난 이제 성당에 가지 않는다.
내 손에 아직 묵주가 끼워져 있지만, 난 성당에 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탓이오"가 하기 싫어졌다. 안 하고 싶다.
내가 내게 겨누는 총에 이제 맞기 싫어졌다.
엄마는 말한다.
"그래도 성당엔 가야지. 가서 기도하면 다 좋아질텐데... 그 분이 알아서 해주실텐데."
난 말한다.
"아니 안갈래, 거기가면 난 죄인이 되거든...이제 죄인 안 할래. "
내가 나를 쏘고 싶지 않다.
성당에 가지 않는데도 가끔 나는 나에게 방아쇠를 당기기도 한다. 그럼 많이 아프다.
몸 전체가 정신 전체가
커다란 빈 밥통이며 빈 밥그릇-2;72
子曰 君子不器
공자님이 말씀 하셨다. "군자는 그릇이 되지 않는다."이 말이 좋았었다.
군자는 동그란 그릇이 되기도 하고 네모난 그릇이 되기도 하고 큰 그릇이 되기도 하고 작은 그릇이 되기도 해야 한다. 시와 때와 장소에 따라 그릇의 모양을 달리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유학의 실용주의가 팍 배인 말이다.
시인은 그런의미에서 한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싯귀를 읽으며, 공자의 말이 생각났고.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부럽다.
나도 커다란 빈 밥통이고 싶고 빈 밥그릇이고 싶다.
밥통들고 밥그릇들고, 내 버려지는 것 천지인 세상으로 가서 마치 밥인 듯이 담아오고 싶다.
세상에 버려진 사랑, 말, 인사, 바람,,, 세상의 모든 것들을 큰 밥통에 담아오고 싶다.
내 집에 웅크리고 앉아 밥통에 담긴 세상을 천천히 보고 싶다.
멋대로!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 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한 눈먼 항구.
알타미라 동굴처럼 거대한 사원의 폐허처럼
굳어진 죽은 바다처럼 여자들은 누워있다
새들의 고향은 거기.
모래바람 부는 여자들의 내부엔
새들이 최초로 알을 까고 나온 탄생의 껍질과
죽음의 잔해가 탄피처럼 가득 쌓여있다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
그 폐허의 사원과 굳어진 죽은 바다를 거쳐야만 한다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나는 독 안에 든 쥐였고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쥐였고
그래서 그 공포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
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는 쥐였다
어쩌면 그 때문에 세계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2;86
내가 어제 전철에서 이 시를 보고 웃었다.
이 시를 읽고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시를 읽는 재미!!! 동감!
붉은 달 아래 소리없이 땀 흘리며
나는 거듭 낳을 것이다
이 세계를
거대한 암흑덩어리를.-2;94
하얀 달, 혹은 붉은 달
하얀 달----차갑게 냉소적으로 내려다보는 달, 하얀 달 너무 하얘서 때로는 검은 하늘에 파르란 달이 뜬 것 같은 차가움.
붉은 달----지친 달. 흐린 달. 붉은 달은 눈물 머금은 달, 내가 보지 못한 어느 세상에 산통을 겪을 누군가를 생각하게 하는 달.
밤----세상을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에어리언의 젤리. 어둠, 암흑은 끌어 담을 수 없는 세상을 진뜩하게 붙여놓는다. 성능이 좋지 않은 501본드, 몇 시간만 버틸 수 있는 시한부 패키지.
잊으시지요.
꿈꾸기 가장 편리한 나는
무덤 속의 나니까요-3;17
이 앞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말하고 있다가 무덤속의 나가 나왔을까?
자신을 잊으려 하는 것일까?
잊혀지고 싶은 것일까?
사라지기 위한 준비일까?
하지만 찬성한다. 가장 꿈꾸기 편리한 나는 무덤 속의 나.
나만의 세상에서 있는 나.
일인용 무덤이어야 한다.
시는 그나마 길이다.
아직 열리지 않은,
내가 닦아나가야 할 길이다.
아니 길 닦기이다.
내가 닦어나가 다른 길들과
만나야 할 길 닦기이다
길을 만들며,
길의 흔적을 남기며,
이 길이 다른 누구의 길과 만나길 바라며,
이 길이 너무나 멀리
혼자 나가는 길이 아니길 바라며,
누군가 섭섭피 않을 만큼만
기꺼이 따라와주길 바라며,-3;13
시인은 시를 쓴다.
난 그 시를 읽는다.
시인은 울면서 시를 쓰고 난 웃으며 읽는다.
시인은 웃으며 시를 쓰고 난 울며 시를 읽는다.
시인은 사랑에 빠져 시를 쓰고 난 실연하고 시를 읽는다.
시인은 사랑을 잃어버리고 시를 쓰고 난 사랑을 찾고 시를 읽는다.
때로는 같이 울고, 같이 웃고, 서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시인의 뒤를 따라 다닌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도 낯선 길을 쫓아가는 모험이며, 여행이다.
오직 가슴하나로 따라나서는 오지 여행이다.
시간이 지난 뒤 그 길을 다시 가면, 눈에 익은,,, 아는 길이기도 한 그 길을 인도해준다.
시는 시인이 닦아놓은 길이다.
그러면 다시 말해볼까.
삶에 관해서, 삶의 풍경에 관하여,
주리를 틀 시대에 관하여
아니, 아니, 잘못하면 자칭 시가 쏟아질 것 같아
나는 모든 틈을 잠그고
나 자신을 잠근다
(시여 모가지여
가늘고도 모진 시의 모가지여)
그러나 비틀어 잠가도, 새어나온다
썩은 물처럼
송장이 썩어나오는 물처럼
내 삶의 썩은 즙,
한잔 드시겠습니까?-3;12
시인님!
삐져 나오는 것이 시뿐이겠습니까?
삶, 그것.
그 어쩌지 못하는 그것.
(정말 때려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살려둘 수도 없는 그 놈의 삶이라 말하고 싶다)
눈치채지 못하게 꼭꼭 들어앉아 있어라고,
열번 물러서서 나만 있을 때 나와라. 그렇게 일러두어도,
시도 때도 없이 삐져나오는 그것,
어둔 밤 산길을 걸어보았는지.
난 어둔 밤 산길을 걸어보았지. 야간산행이라는 것.
캄캄한 어둠,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어보았지.
어둠이 묻더라.
어둠 속을 한참 걷다보면, 아침이 밝아도 어둠이 내게 묻어있더라.
내게 어둠은 묻어서 난 밝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어둠속을 아직도 걷고 있더라.
어둠의 공포를 아직도 가지고 길을 걷더라.
길이 무섭더라.
환한 길이 무섭더라.. 보이지 않았던 길인데, 또 보이지 않을 길인데.
어둠이 내 몸에 묻어 시도 때도 없이 무섭더라.
그렇게 어둠도 삐져나오더라.
어쩌지 못하는 것들은 항상 질기다.
나는 슬픔의 소화기관을
갖고 있지 못하지.
그래서 슬픔을 먹는 대로
곧바로 토해버린다 -3;42
토하지도 못하고, 소화도 되지 않고 가슴에 꽉 맺혀있는 것보다야,
꺽꺽 토해버리는 것이 낫다.
내게 슬픔이 있다면, 난 개워내고 싶다.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고서라도 다 게워내고 싶다.
그럼 내게 슬픔은 남아있지 않을테니까 곧바로 토해버리고 싶다.
누군가 베란다 위에서
그 모든 기억의 추억의 토사물들을
한꺼번에 게워내기 시작한다,-3;49
베란다?
생각났다. 난 베란다에 서기를 좋아한다.
마당집에 살 때, 깊은 밤이면 마당에 나와 섰듯, 지금은 베란다에 나와 섰다.
앞베란다... 그 곳은 내 방에서 나만 서 있을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
이를테면, 똥개 구간이다. 이곳에선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차들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집안에 있다.
나의 앞베란다는 앞동의 뒷 복도니까...
뒷베란다... 나의 집엔 뒷베란다가 없다. 13평 한칸짜리 복도형아파트에는 뒷베란다가 없다.
뒤는 복도다. 복도는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한 줄 전부의 공간이다. 그래서 아주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나가 서 있는다. 그 곳에 서면, 사람들의 기운이 보인다. 뒷동에 널어놓은 빨래가 보이고, 훌라후프 걸어놓은 것도 보이고, 때로 불이 켜진 집도 보인다. 아!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난 베란다에 서 있기를 좋아한다.
때로 그네를 매달고 흔들거리며 베란다에 있고 싶기도 하다.
서정시대는 끝났어.
서정 연습 시대가 있을 뿐이야.-3;48
서정.... 아름다운 말들의 잔치
하지만 청승의 또다른 버전이기도 하지. 나의 트레이드 청승!
앞으론 청승떤다고 하지말고, 서정적이라고 불러주면 안될까?
때로 낭만주의적 지진아의 고백은
눈물겹기도 하지만,
이제 가야만 한다.
몹쓸 고통은 버려야만 한다.
한때 한없는 고통의 가속도.
가속도의 취기에 실려
나 폭풍처럼
세상 끝을 헤매었지만
그러나 고통이라는 말을
이제 결코 발음하고 싶지 않다.
파악할 수 없는 이 세계 위에서
나는 너무 오래 뒤뚱거리고만 있었다.
목구멍과 숨을 위해서는
동사만으로 충분하고
내 몸보다 그림자가 먼저 허덕일지라도
오냐 온 몸 온 정신으로
이 세상을 관통해보자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을 때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없는 곳에서
혹 내가 피어나리라-3;30~31
동사가 필요한 세상에 형용사로 살고 싶은 이 몸은 세상밖에 있다.
저 혼자 자유로워서는
새가 되지 못한다는
새를 동경하는
수많은 다른 눈들이 있어야 한다.-3;59~60
새, 극복하지 못하는 커다란 산.
대학로에 지천으로 널려진 것이 비둘기다.
출근길 지하철역 길바닥에서 아침부터 포식을 하고 있는 비둘기다.
그것들은 나의 극복대상이다.
25년 동안이나 난 새를 극복하지 못하였고, 아마 극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 새가 난다.
날아오른다. 멀리 높이 다른 세상에 이 세상에 구석구석을 날아다닌다.
먼데를 보고 다닌다.
새에게 물으면 저 먼데 이야기도 많이 해줄텐데...
행복한 왕자처럼 눈이 멀어버린 나를 위해 매일 먼데 이야기를 해줄텐데...
그런 새를 난 무서워한다.
동생이 병아리를 가지고 왔다.
병아리가 도망가지 못하게 개집에다 넣어두고, 그 앞에 벽돌로 담을 쌓아두었다.
병아리가 궁금했다. 뭘 하고 있나 궁금했다.
코를 눌러가며 보려했지만, 병아리가 보이지 않았다.
난 몸을 숙였다.
그때 벽돌이 무너졌다.
그 아래 병아리가 있었다.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지 못해서 병아리를 봤다. 내 앞에서 병아리가 죽었다.
아주 오랫동안 죽었다.
나도 오랫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그 후 난 병아리도 닭도 그 말만 들어도 난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내 발아래 병아리가 깔리는 것 같아 걸을 수 없었다.
때로 누군가 업어줘야만 한 적도 있었다.
시간은 무지 무지 많이 흘러 25년이 지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새를 똑바로 볼 순 없어도, 그래도 멀리 있으면 걸을 수는 있다는 것이다.
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새들이 모여있으면, 돌아 돌아 돌아 멀리 돌아 지나간다.
새들은 갑자기 어디선가 떼를 지어 날아오기도 한다.
난 어른인데, 그러면 미칠 것 같다. 무서워서...
아직도 그렇다.
부기:
1.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 지성
2.즐거운 일기, 문학과 지성
3.기억의 집,문학과 지성
..................뒤숫자는 페이지번호
북
최승자
마음의 뒷쪽에선 비가 내리고
그 앞에는 반짝반짝 웃는 나의 얼굴
에나멜처럼 반짝이는
저 단단한 슬픔의 이빨.
어머니 북이나 쳤으면요
내 마음의 얇은 함석 지붕을 두드리는
산란한 빗줄기보다 더 세계 더 크게.
내 밥빌어 먹고 서는 사무실의
낮은 회색 지붕이 뚫어져라 뚫어져라,
그래서 햇살이 칼날처럼
이 회색의 급소를 찌르도록
어머니 북이나 실컷 쳐 봤으면요.
수면제
대낮에 서른 세 알 수면제를 먹는다
희망도 무덤도 없이 윗속에 내리는
무색 투명의 시간
온몸에서 슬픔이란 슬픔.
꿈이란 꿈은 모조리 새어나와
흐린 하늘에 가라앉는다
보이지 않는 적먹이 문을 열고
세상의 모든 방을 넘나드는 소리의 귀신
(나는 살아 있어요 살 아 있 어 요)
소리쳐 들리지 않는 밖에서
후렴처럼 머무는 빗줄기
죽음 근처의 깊은 그늘로 가라앉는다.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바다에 눕는다.
최승자 시집 [이 時代의 사랑]중에서, 문학과 지성 시인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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