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고흐]아를르의 침실 1889. 9

by 발비(發飛) 2005. 5. 9.

 

각이 맞지 않는다.

방에 앉아 방을 그리는데,

좁은 방에 앉아 있는 것은 나 하나인데

침대에 눈을 맞추면

사진이 삐뚤고

사진에 눈을 맞추면

의자가 삐뚤고

의자에 눈을 맞추면

창문이 삐뚤고

좁은 방은 저 멀리까지 이어져 보이고

고흐의 방이 내 방을 닮았다

내가 디카로 찍어대는 내 방을 닮았다

액자를 찍으며 책꽂이가 안나오고

책상을 찍으면 의자가 안나오고

작은 방이라서 그렇다

큰 집은 저 멀리서

뒤로 물러나 찍으면 다 찍을 수 있는데

아마 그의 방도 내 방처럼 작았나보다

저 뒤로 빠져서 한꺼번에 볼 수 없었나보다

좁은 것은 그런 것이다

한꺼번에 볼 수 없는 것

한 눈에 볼 수 없는 것

세상을 살면서 볼일이 좁은 것이 방만이 아닐텐데

생각한다.

좁은 것이 내 방이기만 해라

좁은 것이 그의 방이기만 해라

다른 것들은 넓어 넓어서 뒤로 뒤로 마구 물러나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그런 방이어라

각이 틀리지 않도록

모든 각들이 나를 가운데 점으로 원근감이 잘 잡히도록

넒어라

내 방만 좁아라

내 맘도 넓고 세상도 넓고

넓어라

뒤로 물러나고

또 뒤로 물러나도

넘어지고 막히는 일 없이 마냥 뒤로 걸을 수 있는

그래서 더 멀리 볼 수 있는

그런 넓은 곳이어라

'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티스] 바다가 보이는 창  (0) 2005.05.09
[로트렉] 휴식  (0) 2005.05.09
[박항율]목련을 기다린다  (0) 2005.05.09
[고흐]쉬는 농부  (0) 2005.05.09
[고흐] painter's on his way to work 1888. 7  (0) 2005.05.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