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허연
무엇이든 딱 잘라서 말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
일 없는 늦은 저녁
설렁탕 한 그릇을 함께 먹을 사람조차
마땅치 않을 때
사는 건 자주 서늘하다
나이 들어 하는 사랑은
자꾸만 천한 일이 되고
암 수술하고 누워 있는 동창에게서
몇 장 남지 않는 잡지의
후기가 읽힐 때
생은 포자만큼이나 가볍다
수십 년 전 방공호 속에서
초현실주의 시를 읽었던 선배들은
이렇게 가볍지는 않았을까
바흐를 들으며
페노바르비탈을 먹었다는 그들은
지리멸렬한 한 세기를 사랑했을까
나는 아직도 생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상처에 대해서 알 뿐
안부를 물어줄 그 무엇도 만들어놓지 못했다
대폭발이 있었다던 오래 전 그날 이후
적의로 가득 찬 광장에서
생이여, 넌 어떻게 견뎌왔는지
기찻길에서 풀풀 날리던 사랑들은
얼마나 많이 환생하고 있는지
생각이 아프면 내가 아프다
생이여!
아무도 모를 속사정.
몸이 아프면 내가 아프다.
사람들 사이를 걷는데, 사람들이 부딪힐까봐 몸이 움찔움찔했다.
한사람 또 한사람, 그렇게 사람들은 각각 한사람인데,
사람들을 피하다보니, 한사람이 아니라 한무리가 되었다.
한무리를 피하는 일은 어려웠다.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괜히 혼자서 휘청거렸다.
그제까지 멀쩡히 너도 한사람, 나도 한사람이었던 그들이,
오늘은 그들은 한무리, 나는 한사람이 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는데, 갑자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숙이지도 앉지도 못했다.
걸을 때만 괜찮다.
병원에가서 사진을 찍고, 어쩌고, 도수치료라는 엄청 비싼 물리치료도 받고, 한달은 걸린다는데,
그 진단은 이렇다.
꼬리뼈가 안으로 말려 올라가있다.
그래서 서 있는 모습이 배를 앞으로 내밀고 뒷 허리가 쏙 들어가 있단다.
이것은 내장과 관계가 있는데, 밥을 잘 안 먹어서 장이 활발히 운동을 안하고, 그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꼬리뼈에 이어진 척추가 유연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고, 점점 안으로 밀고 들어온 채 고집을 피우고 있는 형국이란다.
꼬리뼈를 밖으로 밀어내는 물리치료와 함께 밥을 많이 먹어서 장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면 꼬리뼈가 밀고 들어갈 공간이 생길 거란다.
그런 속사정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속사정이야 어떻든,
한 무리 속의 나는 한사람으로 누군가의 무리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다.
마음 속에서 시어로 쓰일 단어들이 너구리의 머리처럼 고개를 들어도 방망이를 내려치지 못하고
마음 속에서 주인공이 된 내가 지금과는 다른 판타지 세상에서 우려곡절 많은 사랑을 하고 있어도, 한무리를 피하는 일에 급급한다.
무엇이든 딱 잘라서 말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
일 없는 늦은 저녁
설렁탕 한 그릇을 함께 먹을 사람조차
마땅치 않을 때
사는 건 자주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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