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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시간

by 발비(發飛) 2016. 8. 25.

 

해바라기 시간.


입사한 후 처음으로 긴 휴가를 가졌다. 그것도 우발적으로~!

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제 가을학기가 시작되면 정말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될 터인데,

아무래도 나는 나를 감당할 수 없을 듯 싶었다. 

강제와 답답함 때문에 자폭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쉬어야 해. 

쉬는 시간에 혹 잘 쉬지 못할 지라도, 나는 너에게 시간을 주었고, 쉬지 못한 것 네 탓이야 하고 나를 나무랄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와 나의 분리.


아주 오랜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다. 

가서 한 일이라고는 바다를 보는 일과 둘의 얼굴을 보는 일, 그리고 착하디 착한 원주민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낯선 길을 찾아가는 일.

그 먼데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곳에서 해바라기씨를 쉼없이 까먹었던 어떤 시간이다. 

딱딱거리며 호텔방에서 해바라기씨를 까먹었다. 

친구는 나를 말리고 싶은 듯 하였으나, 그냥 내버려두자 결심이라도 한듯 웃었다.  

그 한 봉지를 다 먹은 후 다음 봉지를 까려고 하자 절대 못하게 했다.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동안, 스페인의 말라가 바닷가에 해바라기 씨를 뱉어가며 먹었던 시간을 곱씹고, 

터키 아시안 지구 바닷가에서 석양이 지는 것을 보며 해바라기를 까먹던 시간을 곱씹고, 

어느 해에 티벳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해바라기씨를 쉽없이 까먹던 전기회사를 다녔던 얼굴이 어렴풋한 착한 아저씨를 생각했다. 


덧없는 여행에서 돌아오자 바로 식중독, 뭘 먹은 걸까?  내가 먹은 것 중 하나는 썩은 것이 분명했다. 

냉동실과 냉장고에 든 거의 모든 것을 버렸다.  

머리가 터지도록 아프고, 어지럽고, 토사곽란이 계속되었다. 

마치 모든 것을 리셋시키려고 하는 듯 온 몸을 뒤틀며 아파했다. 누군가의 힘을 느꼈다. 

급할 때 먹으려고 챙겨두었던 스테로이드를 먹고 두 번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어젯밤이 되어서야 머리가 맑아지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해바라기씨를 한 봉지 꺼내 딱딱거리며 까먹기 시작했다. 

일정한 간격의 소리가 리듬을 타는 듯했다. 그 경지에 오르자 마치 목탁소리같았다. 

무념무상으로 해바라기씨를 까면서 집을 둘러보았다. 많이 바꼈다. 

낯설게 집을 둘러보면서 해바라기씨 한 봉지를 다 까먹었다. 

해바라기씨가 좋은 점은 배가 부르지도, 텁텁하지도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해바라기씨 껍질은 수북하고, 시간은 몇 시간 훌쩍 지나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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