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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지막 날

by 발비(發飛) 2015. 6. 17.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그런데, 비가 옵니다.

그래서 밖에 있지 않고, 호스텔에서 감자를 삶고, 야채와 토마토에 올리브오일과 식초를 섞은 드레싱을 얹어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먹는 법은 포르투칼에서 만난 쉐프 넬슨이 알려준 것입니다.

아마 스페인 여행 중에 호스텔에서 끼니를 때워야 할 때마다 거의 이렇게 먹었던 것 같습니다. 넬슨을 만나기 전에는 요거트를 사서 드레싱으로 얹어 먹었습니다.

초식동물과 같은 저녁을 먹으면서 ,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가 어디에서 살았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이곳에 익숙해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음식이 익숙지 않고,

하루가 멀다하고 배낭을 지고 이사를 다니고,

새로운 곳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에 먹을 곳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가봐야 할 곳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타고 그곳에 가야 하는지, 뭐 그런 것들을 알아야하고, 조금 익숙해지려고 하면, 다음에 머물러야 할 곳을 찾고, 떠납니다.

낯선곳을 찾아야 하는 사람처럼 말이지요.

뭐... 이런 생활 말이 너무나 익숙해서 태어나고 자라고 말이 통하고 뭐 그런 것이 모두 자연스러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자유롭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새삼 궁금하기도 합니다.

 

3월 말에 스페인에 들어와서, 한달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었습니다.

한달 동안 모두 걸은 것은 아니고, 22일은 걷고, 나머지 열흘은 걷고 타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발목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염증이 생겨서 항생제를 먹어야 될 정도가 되었고, 발톱은 네개가 죽어서 지금은 그 발톱이 모두 빠져 정말 흉한 꼴이 되었습니다. 지금 일종의 핑계를 대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몸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산티아고 북쪽루트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일종에 고통을 주어 얻는 것과 너무나 아름다운 곳을 보면서 얻는 것, 무엇이 나은 것일까?

만약 선택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저는 산티아고를 홀로 걸을 때, 자꾸 저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 좀 싫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북쪽 바다를 가기 위해 들른 오비에도, 귀여운 바다가 있는 야네스, 빛의 도시 로비데오, 최고의 바다 아 코로나 , 묵시아, 피네스테라까지 그 아름다운 바다들을 보면 신이 존재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로비데오에서는 끌리듯 작은 성당으로 들어가 20년만에 처음으로 미사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포르투칼,

저는 리스본이 너무나 가고 싶었더랬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를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고, 이어서 읽은 원작소설은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리스본을 가봤으면 좋겠어... 생각하다가 어떻게? 갈 수 있지? 생각했었는데, 제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리스본에서 소설의 주인공이 다녔을 법한 곳을 쫓아다녔는데, 뜻밖의 만남 페르난도 페소아를 만났습니다. 그가 지난 겨울 저의 마음을 조금은 달래주었던

[불안의 서]의 작가라는 것을 그곳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소설을 읽어보니, 주인공 아마데오에서 페르난도 페소아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더랬습니다. 작가가 소설을 어떻게 상상하여 써나갔는지 조금은 알수 있어서 너무나 흥미로운 여행이 되었습니다.

아, 그전에 포르토를 갔었군요. 포르토는 제가 산티아고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많이 달래 준 곳입니다.

싸고 맛있는 먹거리는 저의 식사량을 배 이상 키워놓아서 처음 입고 갔던 옷이 작아서 더는 입지 못하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런더리서비스를 하는 곳에서 도움을 받은 넬슨이라는 쉐프를 만나 , 그와 함께 포르토의 싸고 맛있는 현지 식당 몇 곳을 돌며 처음으로 그들처럼 밥을 먹었습니다.

그 이후 여행에서 현지인이 즐겨가는 바와 식당을 매의 눈으로 살피고, 밥을 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서는 블가능한 일이지만요.

 

리스본을 떠나 세비야라는 남부도시를 시작으로 다시 스페인에 왔습니다. 세비야는 한국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남쪽 도시인데, 특히 여자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합니다. 무료안주라고도 하고, 전체요리같은 의미도 있다는 타파스, 북쪽에서는 핀쵸스라고 합니다만, 세비야는 타파스가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새벽에 도착해서 세비야 시내로 들어서면서부터 너무나 영화세트장 같아서 마음이 닫혀버렸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객들에 의한, 관광객들의 도시였습니다. 하루만에 그곳을 나오면서 다시한번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기가 이렇게 힘들지 하는 생각에 빠져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물론 스페인의 너무 강한 태양과 더위와 뭐 그런 것들 때문에 몸이 점점 안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어 말라가, 나헤라, 저는 바다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 것이 확실합니다. 스페인의 북쪽 바다를 반 이상 돌고, 포르투칼의 포르토와 리스본의 바다를 매일 보고도 말라가와 나헤라의 바다를 보니 마음이 많이 다듬어졌습니다. 산이나 들은 그곳에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아 걷거나 올라야 합니다. 그런데 바다는 가만히 바다를 향해 서 있으면 바다가 저를 향해 왔다가 갔다가 왔다가 갔다가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 바다에 있으면 혼자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파도소리도 그렇구요. 점점 바다가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바르셀로나의 바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한참을 있었습니다.

 

다음에 옮긴 곳은 그라나다, 제게 그라나다는 알바이신이었습니다. 그곳에 알람브라 궁전이 있다는 것은 꽃보다 할배를 보면서 알았습니다.

저는 오래전 이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 [알바이신의 고양이들]이라는 책을 읽고 정말로 세상에 그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존재하는 곳과 존재하지 않는 곳의 경계 같은 곳이 제게는 알바이신이었습니다. 지금과 과거의 경계, 머뭄과 떠남의 경계 , 모든 경계가 그곳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 알바이신에서 너무나 무서워 벌벌 떨며 거의 혼비백산이 된 후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호스텔 싱글룸에 묵었었는데, 무서워서 도미토리가 있는 다른 호스텔로 옮겨갔습니다. 혼자가 너무 무서운 곳이 제게는 알바이신이었습니다. 저도 왜 그런지 알수 없었습니다. 그냥 집시들의 기에 눌렸을거라는 생각만 들 뿐... 정말 너무나 아쉬운그라나다, 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한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움과 [라 보데가 데 그랑비아]라는 멋진 바에서 매일 먹었던 고급스런 타파스는 알바이신의 무서움을 잊게 해 줄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완전히 도시입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이 두도시에서는 호스텔의 진화, 도미토리의 진화가 대단했습니다. 저는 도시에서 익숙한 도시생활 가운데 저의 서울과 우리의 서울을 비교하면서 그들의 도시를 살폈습니다. 우리에게는 없는데 그들에게 있는 것, 우리에게 있는데 그들에게 없는 것. 그것은 시간과 사랑, 그리고 표현, 뭐 이런 것들입니다. 꼭 어떤 기회에 그런 것들을 말했으면 합니다. 여기 시간으로 새벽 1시가 넘어가니 공동생활을 하는 도미토리 호스텔에서는 마음이 급해집니다.

 

곧 다시 잇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내일 지난 3월에 터키여행을 하면서 너무나 좋았던 이스탄불여행이 너무 짧아 아쉬움에 아쉬움이 겹겹히쌓여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일주일 동안 이슬탄불에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많은 유적들이 있는 술탄마흐멧지구에서 2박3일을 지내고, 배를 타고 건너다녀야 하는 아시안 지구에서 나머지 4박5일을 지내려고 숙소를 예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을 검색하다보니, 우리나라를 오가는 공항은 올드시티쪽이고, 유럽에서 오가는 공항은 아시안지구쪽이네요. 거꾸로 숙소를 예매했다면 너무나 쉬웠을 것을 , 참... 이렇게 밖에 못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사히 잘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는데,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듯 말을 합니다. 참 누군가에게 말이 하고 싶은가 봅니다.

이해해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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