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는 것은 동시에 길을 찾는 것이다.
한스와 함께 캐리온을 걷다가 일부러 길을 마구 걸었다. 캐리온이 작은 타운이라 가능한 일이지만, 의도적으로 길을 잃어보자 싶었다. 좀 소심한 한스가 걱정스러워 할 때, 뜬금없이 내가 한 말. Lost Road, Find Road!!
한스는 L과 R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으며, 문법에 대한 개념도 없는 내 말이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곰곰히 생각하다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Road라고 하지말고 Way라고 할 걸 생각했다가 그때는 그게 맞았지 싶기도 하다.
산티아고 가는 길, 딱 가운데에서 길을 벗어났다. 뜨거운 태양 아래 걸었던 나와 빈대와의 전투에서 완패는 기회가 있다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길을 벗어나기로 결정하기 전에 길을 멈추었다.
멈출 수 밖에 없어 멈추었는데, 멈춘 시간 동안 느리게 걸어오던 보고 싶었던 한스를 만났다. 이어폰을 끼고 지나가던 나를 동네가 시끄럽도록 불러 앞서 가던 이가 나를 멈추어 세워 뒤를 돌아보게 했던. 한스에게 계속 걷고 싶다며 씨유라고 대충 인사를 하고 지나친 것이 마지막이었고 열흘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다.
거대한 가족처럼, 마치 집시들처럼 비슷하게 출발한 사람들은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거의 볼 수 있었다. 매일 밤 한 테이블에서 각자의 나라 스타일로 밥을 먹었다. 독일사람은 늘 있었다. 한스만 안 보였다. 나이가 좀 있어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원래 조근한 성격 탓이라 느린 것인지 만나지지 않았다. 특별함이 아니라 미안함이다.
그날, 사실 머리가 아프고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퉁퉁 부은 몸으로 그냥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어로 궁리해서 말하기가이귀찮고 싫었었다. 그게 계속 미안했었다.
씨유라는 한마디를 하는 내 팔을 쓸며 아 유 오케이를 몇번이나 하던 한스가, 힘드니까 미안했다.
그가, 내가 멈추자 멈춘 곳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내가 동네가 떠나가도록 한스를 불렀다. 붉게 탄 얼굴로 밝게 웃으며 포옹을 했다. 나는 다음날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스를 예매했다고 했고,그는 계속 걸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해가 한창인 한시쯤 만나 서머타임으로 아홉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았던 시간까지 함께 동네를 다니고, 미리 가보았던 해몰이 포인트에서 지는 해를 보고,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작별의 포옹을 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분명한 작별이었다.
뭘까?
그것으로 완전히 길을 벗어나도 될 것 같았다. 산티아고 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으로 그 길에게 뭔가 다 한 느낌이었다.
산티아고와의 이별에 대해서는 말한대로 다음 기회에.
물론 씨유라고 인사를 하고 보지 못한 이들이 있지만ᆢ그들에 대해서도 다음 기회에.
길을 잃고 찾은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
나는 산티아고길에서 말을 잃었었다.
어떻게하다 한국인들과 헤어져 내내 낯선 말들 사이에서 단순한 말을 궁리하느라 말을 잃었다. 말들의 향연, 산티아고를 벗어나 나의 말, 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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