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절거림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by 발비(發飛) 2014. 12. 14.

 

 

김윤식의 [한국근대문학의 이해]라는 책을 사기 위해 온라인 헌책방을 뒤져서 주문을 하는데,

헌책방의 책 값이라는 것이 몇 개의 유물적 가치가 있는 것을 빼고는 대개 3000, 5000, 7000원쯤 한다.

그러니, 당연히 시간을 꼬박 투자해서 함께 주문할만한 책이 있는지 손가락이 쥐가 나도록 책들을 넘겨야 한다.

검색기능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없는 책이 너무 많고, 몇 개의 작은 헌책방들이 연합해 있는 경우는 해당 헌책방의 책만 가능하므로

적어도 나의 결론은 손가락이 쥐가 나도록 페이지를 넘겨가며 책들을 보는 것이다.

이건 마치 오프라인의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디 어디에 딱 놓인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들여다보다보면 아, 이 책하고 만나게 되는, 딱 그렇다.

책을 고르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택배로 온 책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떨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앞에서 말한 [한국근대문학의 이해]와 함께 [인도방랑] [티베트방랑] 등을 쓴 후지와라 신야가 여행기가 아닌 일상 이야기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엘리어트의 시집 [황무지], 이렇게 세권을 주문하였다.

문제는... 문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내게 문제는,

세 권의 책 중에 두 권이 비닐커버가 씌워졌다는 것이다.

김윤식의 [한국근대문학의 이해]는 1973년에 초판이 나와 내가 산 책은 1996년 18쇄로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94학번 000이 공부한 책이다.

남학생인데, 공부를 열심히 하였는지, 앞 부터 뒤까지 고르게 밑줄이 그어져 있다. 비닐커버를 씌웠을만큼 이 책에 애정이 지극한 듯 느껴졌다.

후지와라 신야의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는 2011년에 나온 책인테, 마치 한 번도 책장을 넘기지 않은 듯 종이가 석고처럼 딱딱해져있다.

그런데 비닐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황무지]는 적당히 바랜채 그냥이고....

세 권 중에 두 권의 책이 비닐커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90년대 초반까지는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면 책커버(이걸 뭐라고 불렀는데 잊었다.책꺼풀?)를 싸주었다. 부자동네는 비닐로, 아니면 서점 로고가 새겨진 종이포장지로..., 책을 엄청나게 아꼈던 것이지. 다른 무엇과는 다른 특별대우.

오랜만에 나는 특별대우를 받는 책을 본 것이다.

마음이 찡한 것이,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 "본 적 없는 세상이 그리울 수도 있나요?" 가 떠올랐다.

본 적 없는 세상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서서히 그리고 단단히 매몰된 세상....이 기억난 것이다.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레즈 파스칼] 사소한 일  (0) 2015.08.18
'다시' 라는 말  (0) 2015.07.13
파란만장波瀾萬丈  (0) 2014.12.08
아슬아슬 계주(繼走)  (0) 2014.12.05
누구라기보다 나야말로  (0) 2014.11.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