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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대로 映畵

20140926: 워터마더 도쿄오아시스 그리고 원데이

by 발비(發飛) 2014. 9. 26.

 

아마도 아마도 생을 통틀어 이렇게 평화로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정말 그런가 정말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다는 생각이다.

내 생을 통틀어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행복한 시간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다른 답이겠지만, 내게 평화는 고요함이다.

이른 아침 호수와 같은, 이른 아침 강물과 같은, 이른 아침 바다와 같은, 절대적인 적막과 조금 흐린 시야.

지금 이 순간의 평화가 참 좋다고 탄복하면서도 벌써 그립고도 아깝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자말자, 물한잔과 포도 한 송이를 먹으며, 어젯밤에 다운 받아 둔 [워터마더]를 보기 시작했다.

지독히도 느린 이 영화는 아마 한 달전이라면 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맥박이 완전히 느리고, 움직임이 완전히 느리고, 시간이 멈춰진 듯 겨우 흐르는 지금이라 이 영화는 딱 이었다.

마치 내 공간의 이야기처럼 잔잔하다.

 

마더 워터
マザ-ウォ-タ-, mother water, 2010

마츠모토 카나 사단의 영화이다. 이 멤버들의 영화는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엮으면 엮일 듯이 색깔과 감정과 스토리가 엮인다.

정지된 시간의 의미를 찾고 싶을 때 만나면 딱이지만, 현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 만난다면 대체;; 하는 느낌일 수도 있다.

모타이 마사코, 포스터 가장 오른쪽의 할머니.

마사코를 중심으로 한 마을에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하나 나온다. 나오는 것이 영화의 시작이고 끝이다.

목욕탕을 하면서 포푸라라는 아이를 키우는 남자, 그 집에서 같이 일하는 어린 남자.

의자를 고치는 일을 하면서 저녁이면, 미즈와리-물에 탄 위스키만 하는 카페에서 여주인과 한 잔을 하고 가는 남자(카세료)

카세료와 짝을 이루고 나는 미즈와리를 만드는 카페 주인

매일 다른 드립커피를 만드는 어두운데 알고보면 환한 커피집 주인

하얀 얼굴을 하고 동네에서 가장 일찍 문을 여는 두부집 어린 여자.

그리고 대체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채 동네에서 돌아가면 돌봄을 받는 애기 포푸라.

동네에 흐르는 개천,

서서히 피기 시작해 흐드러지게 피기시작하는 순간에 지기 시작하는 벚꽃,

그 곁에 놓인 앉기만 하면 잠이 드는 의자.

어쩌면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면, 우리도 이런 사람들과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누며,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야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만 한다는 그거, 맞는거야?

이 마을에 산다면 깁스한 나의 다리로 거리를 다녀도 걸림이 없을 것 같다.

 

도쿄 오아시스
東京オアシス, Tokyo Oasis, 2011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수영장] [안경][카모메식당] 그리고 [워터마더]에 나왔던 어쩜 그럴까?

팔다리가 정말 짧은 고바야시 사토미, 이 여자 정말...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내 친구 김상이 말했던 중 2때 나같다.

가진 것 없으면서 혼자만의 언어로 알아듣던 말던 혼자 중얼거리던 아이.)

사토미는 알듯 모를듯한 무명의 영화배우인데, 이 여자와 이여자와 스친 사람들의 이야기? 어폐가 있지만 그렇다.

야간에 양배추를 고속도로로 운송하는 남자(카세료)

전직 시나리오 작가지만 지금은 극장에서 일하는 여자

5수를 하고 있는 23세, 동물원에서 아르바이트 일 자리를 구하는 여자

영화를 찍다가 도망을 친 여자는, 그 여자는 스치는 어떤 사람도 아까운 걸까? 나는 이 여자가 몇 마디를 나누는 낯 모르는 사람을 아까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이 끝난 극장에서 깊이 잠든 여자의 모습에서 스치듯이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자신을 둔다는 것, 그리고 동물원, 그 만남조차 없다면 말라 죽어버릴지도 몰라. 도쿄오아시스. 사람은 살게 되어있다. 

 

[잠시 딴 소리]

 

1. 이 영화를 볼 때쯤 비가 온 듯 했다.

참 좋아하는 굵기의 비인 듯 빗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비다! 하며 베란다로 나가 정말 비인지 확인하려다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고, 또 비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데... 눈으로 확인 안하면 어떤데, 비온다고 생각하면 되지, 하면서 그냥 비려니, 하고 그대로 영화를 보았다. 만약 비였다면.. 벌써 그친걸까?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2. 또 그즈음 배가 좀 고팠고,

마치 일본사람처럼..., (워터마더에서 두부가게 앞에 놓인 나무벤치에 앉아 두부 한 모에 간장을 뿌려 먹는 그 마을 사람들)

어제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다리 때문에 차에서 내리지는 못하고, 길가 어묵가게에서 손을 뻗쳐 샀던 오뎅 한 봉지를 피자와 함께 배달되었던 케찹에 찍어서 먹었다. 요리를 하지 않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 맛도 과정도 앞도 뒤도 모두 간단했다.

 

3. 연달아 보고 싶은 영화들이 생겼다.

그런데 이 방 가득히 꽂힌 책처럼...이 영화들이 본 것인지, 혹은 다운만 받아놓고 안 본 것인지, 결론적으로 영화파일이 있는지,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라별로 정리를 해 둔 영화 파일이 꽤 많이 들어있는, 1TB 외장하드를 간만에 연결시켜본다.

수백편이 좌르륵, 안되겠다싶어 대륙별로 폴더를 만들어 정리해놓고, 노트북에 받아둔 파일들을 외장에 저장하기로 한다.

 

 

그러다. 멈췄다. [원데이] 이게 영국영화였는지, 미국영화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열었다. 보기 시작했다.

개봉할 때 보고, 또 보고 싶어 받아둔 파일인데, 아마 한 번 더 봤을 것이다. 나는 작가가 주인공인 영화를 좋아한다. 그들의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측은하다. 누군가가 엮일 때마다 작가는 주도적이지 못하다. 그게 좋다. 약자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하지만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 또한 작가이다. 그래서 좋다. 물론 이 영화가 그래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원 데이
One Day, 2011. 미국

이 사랑은 우리가 글로, 영화로 만났던 절대 치열한 사랑이 아니어서 좋다.

둘은 분명 닮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던 거겠지.

만약, 사랑도 만남도 혹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에너지운동이라면 

마치 깊은 산속에서 켜 놓은 핸펀처럼, 연결되지도, 연결이 끊기지도 않은, 너무 오랜 시간때문에 방전되고만 그런 사랑.

너무 비약적인가? 원데이, 투데이... 그냥 투데이를 하지... 그럴 걸 그랬지.

 

[또 잠시 딴 소리]

이렇게 평화로운 하루가 지나간다. 어둡다.

이제 좀 더 깊은 밤이 되면 [슈스케6]를 볼 것이다. 난 요즘 곽진언이라는 24살짜리 도전자의 노래가 참 좋다.

유튜브에 보니 공연영상이 엄청 많아, 열심히 찾아 듣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 가장 발랄한 버전 [그대가 들어줬으면], 그리고 [아빠] [백허그].. 이런 노래들도 모두 자작곡인데, 참 좋다.

듣고 있다보면, 사람들의 말처럼 김광석이 떠오른다. 2014년의 김광석.

 

 

하루가 이랬다. ^^

영화 몇 편을 더 볼 생각이다. 이렇게 영활 미친 듯이 보다보면,

[우리 선희]에 나오는 대사처럼 끝까지 끝까지....

가다보면 난독증에 걸려 책이 읽히지 않은 내가 왜?인지, 어떻게?인지  책을 다시 볼 날도 오겠지.

그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별로 할 일도 없는데...

 

 

나름 멋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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