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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국화로 필래
[중앙일보] 입력 2013.12.06 00:44 / 수정 2013.12.06 01:0127년만의 앨범 … 전인권·최성원·고 주찬권의 새로운 행진
소설가 박민규가 지켜본 들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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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힘차게 ‘행진’을 외쳤던 청년 들국화가 이제는 담담하게 ‘걷고 걷고 또 걷는다’고 노래한다. 1985년 1집 ‘행진’, 이듬해 2집 ‘너랑 나랑’을 낸 이후 해체됐던 들국화는 지난해 전인권(59·보컬)·최성원(59·베이스)·주찬권(1955~2013·드럼) 등 원년멤버로 재결성했다. 새 앨범을 준비하던 지난 10월 드러머 주찬권이 돌연 세상을 떠났다. 들국화 27년 만의 신보이자 주찬권의 유작인 ‘들국화’가 6일 나온다. 흑백의 커버 안에 신곡 7곡과 보너스 트랙, 히트곡까지 망라하는 2장의 CD가 담겼다. 지난 여름 내내 그들을 곁에서 지켜본 소설가 박민규씨가 이 흑백의 들국화가 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전한다.
일화 하나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소년이었는데 한 밴드의 공연을 쫓아다니며 보고 있었다. 들국화란 이름의 밴드였다. 그들의 공연은 뜨겁고 아름다웠다. 눈이 부시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환한 빛이 쏟아지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늘, 공연장 근처의 술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테이블마다 그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년들이며 청년들이 있었다. 청춘의 수증기와 노래의 빛이 만들어 낸 무지개와 같은 풍경…. 자연스레 합석이 이뤄지기도 하고, 또 결국엔 합창을 하며 아침을 기다리곤 했다.
차비 없어 성남까지 걸어가던 주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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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루 나는 서울 보광동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나도 무작정 이태원에서 성남까지 걸어가보자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야말로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성남은 정말 멀었고 나는 정말로 젊었으니까. 실로 궁금했던 그 이유가, 이 눈부신 밴드의 드러머에게 무명 시절 버스비가 없었기 때문임을 안 건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누구에겐 전설 … 내겐 신화였던 그들
그때의 복잡했던 마음을 잊을 수 없다. 우리를 위로했던 꿈과 축복의 음악은 정말이지 고통과 절망의 터널을 지나 피어난 한 송이의 들국화였다. 그들은 오래 행진하지 못했다. 순수한 첫눈 같은, 혹은 강렬한 태풍처럼 지워지지 않는 노래들을 이 땅에 남기고서였다. 그렇게 세월은 지나갔다. 그들을 알던 누구도 이제 더는 젊지 않았으며, 오래 전 해체된 이 밴드를 어느새 모두가 ‘전설’이라 부르고 있었다.
오늘 그들의 새 앨범이 나왔다. 27년이란 세월의 강을 건너 마치 거짓말처럼 그들은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를 기적이라 했고 누군가는 이를 귀환이라 칭했지만, 더는 풍문이나 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그들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정말이지 거짓말처럼). 그들의 녹음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지난 여름이, 그래서 행복했다.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겨울비’ ‘재채기’ ‘하나둘씩 떨어져’ ‘친구’ ‘들국화로 必來’….
각설하고 내가 본 것을 말하자면 그 현장엔 어떤 신화도 전설도 없었다. 흥건한 땀과, 여전히 세상을 너무나 모르면서 전력을 다해 음악과 마주한 세 사람의 청년이 있을 뿐이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형님? 오래 전 버스비가 있으면서도 이태원에서 성남까지 걸어갔던 소설가가 물으면 그래, 그래! 그보다 더 오래 전 버스비가 없어 이태원과 성남을 걸어 오갔던 드러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여, 걱정하지 말라”던 읊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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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그가 먼 길을 떠났다. 차비가 필요 없는 바람처럼, 혹은 음악처럼 누구도 붙잡지 못하는 걸음이었다. 음악 말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그를 신이 어떤 얼굴로 맞아주셨을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두 장의 앨범이 이제 마지막으로, 들국화의 이름으로 이 땅에 남았음을 알 뿐이다. 어떤 수사도 붙이고 싶지 않다. 아니, 어떤 수사도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다. 다만 나는 많이 울었다. 마지막으로, 들국화의 이름으로 남은 이 두 장의 앨범 앞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내가 건너온 시대의 음악에 대한 ‘썰’을 풀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또 다른 강요이며 그들에겐 그들의 음악을 찾을 권리가 있다. 다만 이 얘기만을 하고 싶다. 당신들도 결국 먼 길을 걷고 걸어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지난 여름, 내가 사랑했던 한 밴드가 내내 땀 흘리며 진심으로 당신들을 걱정했다는 사실을 나는 증언하고자 한다. 알바만이 있던 일요일을 보내고, 세계로 가는 기차에도 오르지 못한…. 제발, 더 이상 내게 어떤 약속도 하지 말라는…. 행진하고 싶어도 행진할 수 없는 그대들에게 그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인생은 그래도 걷고, 걸어야 하는 길임을…. 아침은 다시 밝아 올 것이고, 아픔은 다시 잊혀질 거라는 것을…. 그리고 피어난 그대들의 삶이야말로 한무리의 ‘들국화’이고 전설임을, 그들은 노래한다. 고마워요 들국화! 인권이 형, 성원이 형, 찬권이 형, 그리고 모두들. 그렇다. 결코 꺾이지 않는 이 땅의 들국화를 위해, 행진!
박민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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