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3일, 정토회, 행복한책방, 행복갤러리, 이문선 박영숙 작품
<적막의 속>
이문선 박영숙 작가님의 사진을 보며 마음가는 대로 마음을 둡니다.
저도 모르게 '김여사'가 떠올라 풋 웃고 맙니다.
그래서 김여사를 쫓아가기로 합니다.
이때 김여사의 교통법규위반이라던가, 민폐라던가 이런 현실적인 문제는 저 멀리 두고... 생각을 뻗쳐나갑니다.
아시다시피 김여사는 차종도 가리지 않고, 지역도 가리지 않고, 잠시도 쉬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을 운전하고 다녔더랬습니다.
그녀의 명성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들과 같이 정말 대단합니다.
그녀 뒤에는 늘 파파라치가 따라 붙었고, 그래서 그녀는 날마다 차를 바꿔 탑니다.
현대차, 기아차, 삼성차, 아주 가끔 메르세데스벤츠를 타기도 하는데, 그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김여사가 아무리 차를 바꿔타도 그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파파라치들에게 매번 한 컷씩을 찍히고 맙니다.
그래서..., 감금되었다고 칩니다.
그런 김여사는 베란다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본다고 칩니다.
김여사가 내려다 본 주차장은 같은 풍경의 연속입니다. 사람들은 전진후진 몇 번을 반복하며 주차라인 안에 차를 잘도 넣습니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서 잘 주차되었는지, 좌우 옆 차와의 간격을 가늠한 뒤에야 안심을 하고 시동을 끕니다.
사람들은 시침을 뚝 따는 듯한 표정을 하고 모두들 집으로 들어가고, 차들은 종일 어딜 다녀왔던 모두 같은 모양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김여사가 보고 있다고 치면, 우리가 김여사의 주차를 보고 웃듯, 김여사도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생각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2001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김지혜시인의 [이층에서 본 거리]라는 시입니다.
왜 시가 떠올랐는지, 저를 쫓아가봅니다. 보이지 않는 곳은 아파트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층에서 본 거리]라는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은 '적막'이었습니다. 적막이 주는 고요함은 적막이 싸고 숨겨놓은 듯한 팽팽함, 가득함, 꽉 참, 이었구나. 하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던 시였습니다. 그 중 3연을 소개합니다.
건너편의 창, 적색 커튼이 휘날리고 있다. 시간이 들고난 것처럼 휑하다. 안은 보이지 않는다. 일몰 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 동굴 같다. 그러나 그 동굴에도 전등 켜지던 밤이 있었다. 불 밝힌 창 아래에서 토악질하던 사내. 목구멍에 검지를 집어넣고 속을 뒤집고 있었다. 돌아가 잠들기 위해 영혼을 뒤집던 사내는 전신주처럼 깡말랐었다. 깡마른 영혼들이 분주하게 오가던 골목은 그러나 이제 텅 비워져 있다. 깨진 유리창. 찢겨 울부짖는 적색 나일론 커튼. 절벽처럼 캄캄해지고 절벽처럼 늙어가는 창. 영영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아직 닫히지 못한 창을 나는 바라보고 있다. 창도 그런 그런 내가 끔찍할 것이다. 영원히 다물리지 않을 것만 같은 입구들이 키를 쥐고 있음을. 그 안엔 환상도 캄캄하리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창의 건너편에서 나는 매일 꼼짝않고 있으므로. -[이층에서 본 거리] 중에서
그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며 상상을 쫓아갔더니. 고요한 적막 속의 숨은 사정들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두 정황은 분명 다르지만, 우리는 내 사정, 니 사정 알 것 없다하고 그저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것이 '김여사'의 배꼽 잡게 웃을 수 밖에 없는 주차가 되었건, '이층에서 내려다 본 거리'의 슬프고도 처절하기까지 한 골목길이 되었건, 어쩌면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봉합하고 ‘적막’에 가깝게 각자의 소리를 죽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밤이 되면 일상의 팽팽한 적막을 곁에 내려두고, 불 켜진 집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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