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put: (일・사업 등을 성공시키기 위한) 조언, (시간/지식 등 의 제공) 투입
output: 생산량, 산출량
같은 부서 직원 중 한 명이 오늘부터 휴가이다.
어제 퇴근즈음에 그 친구와 휴가 잘 다녀오라는 의미로 함께 하드를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휴가때 뭐 할 거냐는 나의 질문에
"그냥 집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고 싶어요."
나는 그게 뭐냐며 좀 더 보람차게 보내보라고... 했고, 그 말에
"뭔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다.
이 친구와 함께 꽤 큰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고 있는데,
이 일이 일정도 바쁘고, 중요한 핵심인력을 일일이 콘트롤을 해야하는 일이다.
그 핵심인물이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있는 그런 사람들처럼 함께 일을 하고, 콘트롤 당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유형의 인물이다.
그래서
긴 시간을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니, 새로운 상황을 항상 제시하며 끌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런 전술들에 관해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우연히 튀어 나온 말이
"일을 해나가는 자신을 매 순간을 의식하려고 해 봐. 그럼 상황을 끌고 갈 수 있을거야."
"??"
"충전을 오로지 책에서만 얻으려고 하면 현실과 책이 준 데이터 사이에서 오류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 같던데....
의식하면서 일을 하면..., 그 순간은 어쩌면... input, output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이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랬던 거 같아.
물론 input은 데이터로 고스란히 내게 남아있는 것일테고... 그런 거 같아."
이런 어줍잖은 말을 해놓고, 뭔가 머리 속에 지도 하나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내 속의 말이 말이 되어 나온거다.
그 친구는 뭔가 알거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휴가 중에 자기안에 데이터의 양을 늘이는 것에 대해 열심히 잘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하니, 주인이 휴가가고 없는 빈 책상들이 나란하다.
어제 한 말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회사생활은 데이터가 input 되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output만 이어진다.
그래서 소진된다.
그것은 어쩌면 일을 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매 순간, 현재를 의식하며 일을 했어도 소진되었을까? 그것 스스로가 input의 상황은 만들수 없었던 것일까?
일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그보다 빠져나가는 것이 많아 직장인들은 허한 것이다. 답은 의식이 아닐까?
오로지 나의 것이 아닌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일을 해나가면서도, 나의 것이 되도록 하는 방법은..., 의식하다.
나는 내가 내린 해법, 드라마의 대사처럼 한 땀 한 땀 매 순간 의식을 하면서 일을 한다면... 살아간다면...
소진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베트.
고산. 고산증. 힘들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몇 년전 고산지대인 인도의 라다크를 갔을 때의 매 순간에 대한 기억때문이다.
손 끝 하나를 움직일 때도..., 한 마디 말을 위해 위해 입술을 움직일 때도...,
내 몸과 마음, 하나하나 의식되었다. 혹은 의식하고 움직였다.
나는 지금 그것이 필요한 상태이고, 본능적으로 그것을 공급받기 위해 티베트로 가려 한 것이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원래의 뜻은 뭔가 난 인물은 어디에 있어도 드러난다는 말이지만,
그래서 말의 의미는 적절치 않겠지만, 그 상황만 차용한다면
주머니에 넣어놓은 송곳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품고 있던 생각이 휴가간다는 그 친구와의 이야기 속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다.
어떤... 한동안의 시간을 보낸 뒤의 내려진 결론이 맘에 든다.
인간은 하나의 生안에서 진화한다. 변한다. 달라진다. 그래서 참 희한한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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