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에게
H.헤세
나의 나무에서 또 하나의 잎이 떨어진다.
나의 꽃에서 또 하나가 시든다.
희미한 빛 속에서 기이하게
삶의 얽힌 꿈이 나에게 인사한다.
주위에서 공허가 어두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나 둥근 하늘 한가운데서 어둠을 뚫고
위안에 찬 별이 하나 웃고 있다
그 궤도가 차츰차츰 가까이 그를 끌어 당긴다.
나의 밤을 부드럽게 해 주는,
조금씩 나의 운명이 끌어당기는 착한 별이여,
내 마음이 무언의 노래로 너를 기다리고
환영하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보라, 나의 눈은 아직도 고독에 차 있다.
나는 가까스로 서서히 너를 향하여 눈을 떤다.
나는 다시 울고, 다시 웃어도 좋은가,
너와 운명을 맡겨도 좋은가.
오래된 애인에게
언젠가 어느 날에 난 그에게 말했었다.
참 많이 당신을 사랑한다. 그리워한다.
그런데 나눌 수 없으니, 만날 수는 없으니
참 많이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그리울 때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정말 그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했었다.
비가 온 뒤 햇살이 쨍한 날,
그는 눈부신 햇살 사이로 걸어와 내 앞으로 와 서 있다.
꽃은 피었다 졌고,
그리고 꽃잎은 떨어지고, 꽃대도 뭣도 다 떨어지고...
난, 꽃나무지만 잎파리만 성성한 푸른 꽃나무가 되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햇살 가득한 하늘만 보고 살던 꽃이 지자, 푸른 꽃나무는 하늘은 보지 않고 땅만 보고 시퍼렇게 서 있다.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 나의 눈은 아직도 고독에 차 있다.
나는 가까스로 서서히 너를 향하여 눈을 떤다.
나는 다시 울고, 다시 웃어도 좋은가,
너와 운명을 맡겨도 좋은가.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효근]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0) | 2008.09.23 |
---|---|
[박상순] 너 혼자 (0) | 2008.09.05 |
[박상순]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0) | 2008.08.25 |
[박상순] 안개 (0) | 2008.08.25 |
[크리스티나 로제티] 오르막길 (0) | 2008.07.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