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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다시 석군에게서 받은 메일

by 발비(發飛) 2007. 9. 26.

 

어디로든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꽉 찬 날들이다.

울릉도를 다녀왔었는데,

집으로 돌아와 확인한 메일에 사진 한 장이 왔다.

지난 번에 소개했던 파키스탄 훈자 하이데르인 게스트하우스의 죽순이를 자처하던 석미정에게 온 메일이다.

 

안녕하세요?
한국 들어온지 벌써 3달이나 되었네요. 절 다시 받아줄 직장을 찾아 헤메고
천하의 불효자로 집안 식구들의 지탄을 받으며 근신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언니의 귀국은 저보다는 더 환영받으셨겠지요?
 
마음도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고 달님을 향해 빌어볼 예쁜 소원도 마음에 품으시길 바래요.
한가할때 불러주시면 달려나가 언니가 주고 가신 침낭으로 제 목숨을 구한
보답을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멋진 가을 보내시길...
 
파키스탄 훈자의 인연, 석미정보냄

 

그러면서 지난 번에 빠진 사진 한 장을 또 보내왔다.

나와 이별의 악수를 하고 있는 사람은 하이데르 인의 주인 할아버지, 내게 일용할 밥을 주시던 분이시다.

잔소리라기 보다 뭘하나 하면서 자주 왔다갔다 해서 신경을 쓰이게 하시던, 딱 걱정많은 할아버지 그 자체이신 분,

마주 앉은 사람은 이름도 성도 잊어버린, 

모양은 전문 여행자인데, 사실 여행이라고는 처음 나왔다는 과수원집 몇 째 아들이라는... 아주 순진하고 착했던 청년이다.

그는 내가 훈자를 떠나던 날, 길깃으로 떠난다면 같이 길을 나섰더랬다.

 

석민정을 석군이라고 불렀었는데, 석군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연습 중이겠지.

난 이제 내게 떠남은 없었던 듯 기억이 사라져가고 그저 현실속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그래서 엉덩이가 자꾸 들먹이는데,

이 사진 한 장이 맘을 다시 잡게 만든다.

갑자기 길을 돌려 서울로 왔었다.

마음이 그대로 그렇게 떠도는 것이 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결론으로 보람차게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사진에서 검게 탄 내 얼굴과 내 손이 여행의 고단함이 그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에서 여행의 충만함이 그대로 보여진다. 

 

왜 나는 저렇게 활기차게 움직여지지 않는건가?

어제 울릉도에 다녀온 사진들을 보면서 나의 인상이 참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인상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는데...

잠시 내 삶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는지 몰라.

시기적절하게 내게 던져준 사진 한 장이 오늘의 지표가 되어 '이쪽으로 가라'고 일러준다.

 

행복하자!

나때문에 행복하자!

그리고 만나자, 나를 빛낼 수 있는 것들로만 골라서 만나자.

나를 어둠으로 몰아가는 것들은 과감히 내 삶에서 빼내도록 하자.

그 어둠이 나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더라도 이젠 그 어둠을 모른 척하자.

 

아이처럼 이런 격문을 스스로 만들어본다.

그 때 난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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