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모터사이클
강정
몸 안의 뼈들이 문득, 분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가루로 흩어진 내 몸이 저만치 앞질러 미래의 풍경들을 장악한다
(보아라, 시간이 한꺼번에 터져 늘신하게 드러눕지 않는가)
이 숨막히는 질주는 자기 자신의 출생지점으로 되돌아가는 별의 행로와 다를 바 없다
내 몸에서 가장 먼 풍경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나는 내 심장박동을 느낄 수 없다
아스라한 소음으로 쓰러지는 가로수들이 귀 먹먹한 어둠 속에서 손을 빼낸다
낡은 시간들을 흔들며 춤추다 사라지는 저것들은 어느덧 영겁으로 변해 내 몸의 비린 녹내를 마신다
나를 실어온 길들이 네모난 창공으로사방에서 펄럭인다
누워 있던 풍경들에서 숨은 바람을 꺼내 흔드는 이 무모한 질주는 도착지가 없어 아름답지 않은가
세계는 이렇듯 맹목의 날 선 눈물 앞에서나 완전하게 허물어지는 것이다
사라진 기억들을 불러모으는 나방떼처럼
불꽃으로 터져나오는 눈물이여,
영락없이 솟구치는 열락의 핏줄기여,
바람에 꺾인 모가지로 후진하는 내 몸의 여린 마디들을 불태워다오
한낱 시간의 가루에 지나지 않는 내 몸이 허공에서 부서진 불꽃의 잔해로 우수수 지워지고 있다
모든 풍경을 절해의 고도로 바꾸는 이 늘씬한 음탕함
정직하게 얼어붙어 시간을 냉각시키는 이 열망은 반성 이전의 자유, 미친 사유의 폭거
속도가 세계의 지평을 바꾸는 저 검은 풍경들 속에서 매순간, 풍경 바깥으로 사라졌던 내가 튀어나온다
땅 밑 어둠마저 불덩이로 달궈온 저 몸이 속도계 눈금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파르라니 떨게 만든다
이 숨막히는 질주 속에서 살아 돌아온 저 몸은 이미 시간밖의 사물, 외계에서 귀환한 나의 후손이 아니겠는가
외계의 분비물로 가열되는 차가운 열망 속에서
한껏 엎드린 내 몸의 중심이 깃발처럼 펄럭이며 사라지고 있다
한 줄로 연기로 풍경을 삼킨 한밤의 심장이 폭풍과 침묵의 교합을 주재하는 동안,
몸을 맡겨버리는 것이다.
한 밤에 모터싸이클을 달리는 것은, 시속 80내지는 120정도로 달린다는 것은 운명에다 나를 던져버리는 것이다.
난 거기서 어떤 선택을 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신이거나
길이거나
마주 달리는 트럭이거나
콘크리트 중앙분리대이거나
이런 것들이 가지는 선택의 권리를 난 하나도 가지지 못한다.
때로는 선택하고 싶지 않을 순간이 있다.
그저 누군가의 선택이 무엇일까 숨 죽이며 기다리고 싶기만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끝이어도,
다시 시작이어도,
아님 여전히 계속이어도 그것 모두가 나의 선택이 아니길 바란다.
한 밤에 모토싸이클을 타고 달리는 것은 세상의 바닥에 널부러진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내 몸 어느 부분에서 흘러나올 피를 보는 것이다.
내 피가 흐르는 곳은 가장 얇은 피부를 가진 곳일 것이며,
내 피가 샘솟는 곳은 내 장기 중 가장 약한 곳일 것이며,
내 피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곳은 내 몸이 하늘로 솟은 후 가장 먼저 땅에 닿은 곳일 것이다.
그래서 난 상상할 수 있다.
내게 피 흘릴 곳이 얼마나 많을지 한 밤에 모터싸이클을 타고 달리다 보면 가늠할 수 있다.
달리다
내가 바닥에 얇게 펴지지 않고 모터싸이클에서 내려 두 발로 바닥에 땅을 디디면
마치 첫걸음마를 하는 아이의 발처럼 발바닥이 동그랗게 말려 있는 듯 잠시 기우뚱한다.
심장은 박동수치가 100정도로 떨어지고,
흔들리는 조명들은 반경 50미터정도까지 밝게 비친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난 경계를 넘지 않고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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