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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강정] 한밤의 모터사이클

by 발비(發飛) 2007. 8. 6.

  한밤의 모터사이클

 

  강정

 

   몸 안의 뼈들이 문득, 분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가루로 흩어진 내 몸이 저만치 앞질러 미래의 풍경들을 장악한다

   (보아라, 시간이 한꺼번에 터져 늘신하게 드러눕지 않는가)

   이 숨막히는 질주는 자기 자신의 출생지점으로 되돌아가는 별의 행로와 다를 바 없다

   내 몸에서 가장 먼 풍경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나는 내 심장박동을 느낄 수 없다

 

   아스라한 소음으로 쓰러지는 가로수들이 귀 먹먹한 어둠 속에서 손을 빼낸다

   낡은 시간들을 흔들며 춤추다 사라지는 저것들은 어느덧 영겁으로 변해 내 몸의 비린 녹내를 마신다

   나를 실어온 길들이 네모난 창공으로사방에서 펄럭인다

   누워 있던 풍경들에서 숨은 바람을 꺼내 흔드는 이 무모한 질주는 도착지가 없어 아름답지 않은가

   세계는 이렇듯 맹목의 날 선 눈물 앞에서나 완전하게 허물어지는 것이다

 

   사라진 기억들을 불러모으는 나방떼처럼

   불꽃으로 터져나오는 눈물이여,

   영락없이 솟구치는 열락의 핏줄기여,

   바람에 꺾인 모가지로 후진하는 내 몸의 여린 마디들을 불태워다오

   한낱 시간의 가루에 지나지 않는 내 몸이 허공에서 부서진 불꽃의 잔해로 우수수 지워지고 있다

 

   모든 풍경을 절해의 고도로 바꾸는 이 늘씬한 음탕함

   정직하게 얼어붙어 시간을 냉각시키는 이 열망은 반성 이전의 자유, 미친 사유의 폭거

   속도가 세계의 지평을 바꾸는 저 검은 풍경들 속에서 매순간, 풍경 바깥으로 사라졌던 내가 튀어나온다

   땅 밑 어둠마저 불덩이로 달궈온 저 몸이 속도계 눈금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파르라니 떨게 만든다

 

   이 숨막히는 질주 속에서 살아 돌아온 저 몸은 이미 시간밖의 사물, 외계에서 귀환한 나의 후손이 아니겠는가

   외계의 분비물로 가열되는 차가운 열망 속에서

   한껏 엎드린 내 몸의 중심이 깃발처럼 펄럭이며 사라지고 있다

   한 줄로 연기로 풍경을 삼킨 한밤의 심장이 폭풍과 침묵의 교합을 주재하는 동안,

 

몸을 맡겨버리는 것이다.

한 밤에 모터싸이클을 달리는 것은, 시속 80내지는 120정도로 달린다는 것은 운명에다 나를 던져버리는 것이다.

 

난 거기서 어떤 선택을 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신이거나

길이거나

마주 달리는 트럭이거나

콘크리트 중앙분리대이거나

이런 것들이 가지는 선택의 권리를 난 하나도 가지지 못한다.

 

때로는 선택하고 싶지 않을 순간이 있다.

그저 누군가의 선택이 무엇일까 숨 죽이며 기다리고 싶기만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끝이어도,

다시 시작이어도,

아님 여전히 계속이어도 그것 모두가 나의 선택이 아니길 바란다.

 

한 밤에 모토싸이클을 타고 달리는 것은 세상의 바닥에 널부러진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내 몸 어느 부분에서 흘러나올 피를 보는 것이다.

 

내 피가 흐르는 곳은 가장 얇은 피부를 가진 곳일 것이며,

내 피가 샘솟는 곳은 내 장기 중 가장 약한 곳일 것이며,

내 피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곳은 내 몸이 하늘로 솟은 후 가장 먼저 땅에 닿은 곳일 것이다.

 

그래서 난 상상할 수 있다.

내게 피 흘릴 곳이 얼마나 많을지 한 밤에 모터싸이클을 타고 달리다 보면 가늠할 수 있다.

 

달리다

내가 바닥에 얇게 펴지지 않고 모터싸이클에서 내려 두 발로 바닥에 땅을 디디면

마치 첫걸음마를 하는 아이의 발처럼 발바닥이 동그랗게 말려 있는  듯 잠시 기우뚱한다.

심장은 박동수치가 100정도로 떨어지고,

흔들리는 조명들은 반경 50미터정도까지 밝게 비친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난 경계를 넘지 않고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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