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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고영]저수지

by 발비(發飛) 2007. 4. 20.

저수지

 

고영

 

밤새 얼어붙은 저수지

산 그림자를 견딜 만큼 두꺼워졌다

물결 주름이 잡혔다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얼음 물소리

바닥을 치는 물소리

 

제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홀로 깊어가는 저수지

 

두꺼워진 낯짝으로

속마음 가린다

 

아버지는 저수지였다.

 

그나마 볼 수는 있는 유일한 자식인데.....

제대로 얼굴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열시간이 넘는 수술시간이 지나고 마취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아버지는 옴싹도 하지 않았는데.... 

 

아침 전화에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오래도록 했는데,

어둔 밤에 전화를 다시 전화하셨는데,

나 데리고 도망가라!

 

 

어디로 가시고 싶은걸까요.

무엇에서 도망가고 싶은걸까요.

 

그리고 아무말없는 수화기.

더는 말소리 들리지 않았던 수화기에서 들리는 낮은 숨소리.

 

아버지는 움직이시지도 않으셨고, 썩지도 않으셨다.

아버지는 저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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