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고영
밤새 얼어붙은 저수지
산 그림자를 견딜 만큼 두꺼워졌다
물결 주름이 잡혔다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얼음 물소리
바닥을 치는 물소리
제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홀로 깊어가는 저수지
두꺼워진 낯짝으로
속마음 가린다
아버지는 저수지였다.
그나마 볼 수는 있는 유일한 자식인데.....
제대로 얼굴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열시간이 넘는 수술시간이 지나고 마취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아버지는 옴싹도 하지 않았는데....
아침 전화에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오래도록 했는데,
어둔 밤에 전화를 다시 전화하셨는데,
나 데리고 도망가라!
어디로 가시고 싶은걸까요.
무엇에서 도망가고 싶은걸까요.
그리고 아무말없는 수화기.
더는 말소리 들리지 않았던 수화기에서 들리는 낮은 숨소리.
아버지는 움직이시지도 않으셨고, 썩지도 않으셨다.
아버지는 저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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