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것과 이미 만들어진 것
어쩌다보니, 그 곳을 다녀온지가 벌써 5년정도되었네요.
그때는 겨울이었고, 우리가 주차를 했던 남부주차장이나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겨울이되면 마이산의 남쪽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습니다.
찬 바람이 휘도는 호수를 따라 호호 거리며 오래 오래 걷다보면
회색천지를 만났더랬습니다.
겨울의 회색빛 하늘아래로 회색빛 산과 회색빛 돌탑들, 그리고 새들마저도 회색.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에 휩싸이다가 어떤 신호인지 알 길이 없는데,
마치 누군가의 신호를 받은 듯 절벽 구멍을 둥지로 삼고 있던 회색빛 새들이 일제히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 이곳이 대체 어디지?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 곳을 이번에는 꽃을 보겠다고 찾아간 것입니다.
일단 꽃이 제대로 피어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
적당한 굵기로 자라야지 싶더라.
벚나무는 너무 굵었다.
흔들어주고 싶었는데.... 후두둑 후두둑 억지로라도 꽃비를 내리게 하고 싶었는데....
너무 굵어서 엄두조차 낼 수 없더라.
너무 튼튼해지지는 말자. 싶더라.
누군가가 꽃비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흔들려줄 만큼만 자라자... 아주 시간이 오래가더라도 너무 굵어지고 튼튼해지는 말자. 싶더라.
마이산 탑사의 돌탑은 해가 갈수록 작아지나 해가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었다.
세월만큼의 바람이 불면 돌들은 아주 조금씩 움직이며 몸을 틀며 좀 더 단단할 수 있는 자리를 잡을 터이고,
또 세월만큼의 바람이 불면 바람에 날려온 먼지들은 돌들 사이에 끼어 아교가 되어 주는 것이다.
시간이가면 갈수록
점점 더 탑의 모습이 될 ..... 아직도 탑이 되기 위해 몸을 틀고 있는 돌탑들.
그 사이에 돌처럼 끼인 그렇지만 알록달록한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사람은 어디있을까 찾게 되는 나도 알록달록한 돌.
*
마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 밖으로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점점 많아지는 우리!들과 떠들썩 즐거운 수다 시간을 보냈습니다.
불친절한 주인을 만나 우리들은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주인의 주방을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자유를 가졌습니다.
좋았어요!
마이산을 들어가면서 보았던 표지판, 운일암반일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마음이 원한다.
간절히 그 곳을 원하는데... 안될건데... 갔으면 좋겠다... 가고 싶다...어떻게 하면 저기를 갈 수 있을까...
운전기사님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운을 떼었지만, 단칼에 잘렸다.
주눅 팍팍!!
마침 회장님께서 잘 가고 있냐고 전화가 왔더랬다.
말난김에 한번... 운일암반일암 가고 싶은데 안 된다고 해서 포기했어요. 했더니..
얼마나 걸리는데? 거기가 뭐하는 곳인데?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데... 운일암반일암이 나오는 시 본 적있어요. 거기 시에 나오는 곳이예요. 아마 20..30분쯤요.
알았어 기다려 봐!
(..... 기다림 2분)
가라고 말했으니까...잘 보고 와라. 후기에 운일암 나온다는 시나 올려! 그럼 됐지? 잘 다녀와...
그렇게 가게 된 운일암반일암.
전라도에서 만나는 강원도.
여긴 그냥 시로 대신합니다.
"운일암반일암은 옛날 이 곳에 길이 뚫리기 전에는 구름만 지나다녔다고 해서 부여진 이름이 운일암이고, 골이 워낙 깊어 하루에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반나절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반일암인데, 이 둘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김휴림의 여행편지 중에서
운일암반일암
손옥자
햇빛이 이파리에 빗살무늬 새기기 시작하면
운일암반일암은 소리뿐이다
산들이 계곡으로 쏟아져내리는 소리
계곡물이 바위에 부서지는 소리
돌들이 햇볕에 익어가는 소리
그늘이 계곡으로 걸어나가는 소리
우리 아버지, 손자와 바둑두는 소리
옆에서 훈수하는 벌떼소리
낮, 반 토막이 잘린 운일암 반일암은
날만새면 소리들이 바쁘다
운일암 반일암
김경실
구름이 많고 산이 깊어
해가 떠서도 반나절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운일암 반일암
꽃 피고 새 우는 좋은 계절에
난생 처음 그곳에 갔었는데요
우선, 바위 크기에 놀라
제풀에 뒤로 넘어졌어도
한참 넘어졌을 것 같더라니까요
거기다 계곡 물소리까지 보태어
사람 미치게 그냥 혼을 빼놓는데
맨정신으로는 발길 돌리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 억지로 집에 돌아와서도
꿈속에서조차
그야말로 집채만한 바위에 둘러싸여
꼼짝 못하고 가위에 눌렸다네요
어디에나 무엇이 있는 것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와 무엇을 만나는 것은 누구라는 이름의 우리들이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이 초록별에서 사라질때까지는 같은 땅에 버티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똑같은 것입니다.
그 곳에 있던 바위도, 풀도, 윙윙거리며 날던 벌도....
스윽 지나갔더라도,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어쩌면 초록별을 떠날 때까지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는 곳을 만나고 온 짜릿함 같은 것.
그런 운일암반일암과의 인연이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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