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있다는 말을 한다.
원래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뜻의 말인듯 싶다.
현대판 인연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한 가수의 팬들이 만든 카페에서는 밤마다 음악방송을 한다.
매일 번갈라가면서 7명의 CJ가 방송을 한다.
전국 각지의 각각 다른 억양을 가진 CJ들이다.
음악신청을 게시판을 통해서 하고, CJ는 게시판을 보고 음악을 틀어준다.
가끔은 채팅창을 통해서 닉으로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또 가끔은 동시에 듣고 있는 노래를 자판으로 따라부르기도 한다.
(나처럼 음치는 자판으로 노래를 따라 부를때 정말 행복하다. 마치 가수가 된 듯 한 기분이다)
그 카페의 방송 CJ중의 한 분이 나와 비슷한 성향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의 방송 시간이 되면 꼭 듣게 된다.
카페에 로그인을 한 후 음악을 듣는 파일에 접속한 뒤 카페에서 나오면
난 카페에서 부재중이지만, 음악은 계속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난 나를 '은둔청취자'라고 부른다.
그녀는 지금 제주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물론 채팅을 통해서 알았고,우리는 동갑이었고,그래서 친구가 되기로 했다.
멀리서 있는 친구가 되기로 하고 핸펀번호도 교환했다.
리고 몇 번의 어색한 통화를 했다.
만나지 않았으니까...
그 친구가 몇 주전 서울에 잠깐 다녀갔고, 마침 혜화동유치원 견학이 있어서
난 그녀을 잠깐 만날 수 있었다.딱 30분... 반가웠다. 기념촬영도 했지.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난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지만,
그건 동호회에서 거의 만원정도의 차비만 내고 움직이는 것이라 거의 매주의 여행이 가능하다.
거긴 멀고 비싸고... 그렇다.
울릉도처럼 큰 맘먹고 가야하는 곳이다.
제주도에서 자전거로 하는 하이킹이 꿈이지만, 그것은 꿈으로만 가지고 있을뿐이다.
"제주에 꼭 오라고.. 단체관광말고..개인적으로 오라고,,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고.."
그렇게 그 친구가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 한 번 만났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의 주소를 묻는다.
제주에 관한 정보가 있는 책을 보내주겠단다.
난 제주에서 관광책자를 보내는 줄 알았다.
오늘 책 두권이 제주에서 등기로 도착했다.
두권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제주도 오름이야기]
이건 관광안내책자가 아니라, 사진과 이야기가 같이 있는 환상적인 책이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사진작가가 20년간 제주에 머물면서 찍은 제주의 사진과 그 이야기다.
사진 한 컷을 보는 순간, 완전 필이 꽂혔다.
그리고 사진들을 주루룩 주루룩 보고, 그의 이야기를 주루룩 하고 대충 눈으로 보았다.
삶 전체를 사진과 제주에 묻어버린 사람인 듯 싶다.
그 보여지는 모습은 마치 [칼]을 쓸 당시의 이외수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루게릭병으로 투병중이란다..
그 분의 투병보다는 그 분의 눈으로 발로 찾아낸 제주의 풍경들,
한 순간들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한 순간, 그 순간을 카메라에 잡아두는 것.
지금도 흘러가고 있을 한 순간을, 우리는 보지 못한 한 순간을 순간이 아니라 영원의 시간으로
잡아두는 작업을 한 사진들이다.
난 컴을 열어서 김영갑이라는 분을 검색했다.
그 분의 정보가 인터넷에 떠올랐다. 무지 반갑더라.
책 안의 사진에서 본 그림들이 인터넷에서도 보였다.
'두모악'이라는 갤러리 이야기가 나온다.
그 분은 루게릭이라는 병에 걸리자
그 분의 사진과 제주를 위해 '두모악'이라는 갤러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폐교에 만든 갤러리.
그곳에 제주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고 했다.
그림으로 보아도 참 이쁜 곳이었다.
나에게 꿈이 하나 더 생기는 순간이다.
제주를 하이킹하고 싶은 꿈에 '두목악'이 보태어져 김영갑작가님을 꼭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눈을 만나고 싶었다.
그 눈으로 본 제주가 너무 아름다워 그 눈이 잡아낸 제주의 사진들이 멋져서
난 그 분의 눈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눈을 잠시 빌어 제주를 보고 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상상속의 나는 순간 무지 행복하고 충만되었다.
내가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구나... 대견하다. 난 또 한 사람의 예술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 새로운 만남
그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다.
내가 사람에게 그것도 예술가라는 사람에게 열광하는 이유이다.
그렇게 잠시 그러나 무지 행복했는데, 그 분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순간,
내 온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아마 몇 분간은 내 팔과 손을 비벼야 했다.
그 분의 홈페이지에 그 분의 부고장이 있었다.
난 그 분을 뵐 생각에 부풀어있었는데, 그 분은 몇 달 전 세상을 뜨신 것이다.
이 책의 두번째 챕터는 '더 머물러도 좋을 세상' 이었는데, 그 분은 더 머물러 계시지 않으셨다.
내가 만난 사람들.
만났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런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감동하고, 부러워하고, 그리고 감사한다.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그 사람들이 대신 보여준다.
난 인연때문에 소름이 돋는다.
인터넷이라는 이상한 공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만남이 만남을 이어주고, 난 이렇게 또 한 사람에게 필이 꽂혀 그 사람의 삶과 사진에 빠져있다.
그는 없다.
그가 꿈꾸었다는 아니 발견했다는 이어도로 그는 갔다.
그가 이어도로 간 지금, 난 인연의 끈을 따라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언젠가 제주를 가겠지.
그리고 그 제주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두목악'을 꼽겠지.
그의 사진들을 보겠지.
내가 내 눈으로 보는 제주도 아름답지만, 그의 눈을 빌어 본 제주는 더욱 아름답겠지.
타인의 눈을 빌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은 인연이라는 끈이 있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오늘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지금 내가 가고픈 '모두악'에 사진이 있고, 그 사진을 김영갑작가님가 찍었고, 김영갑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때문에 만났던 카페 친구때문에 알게 되었고, 난 그 가수를 오래전부터 좋아했고, 내가 그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어린시절의 내가 있기때문이고....
인연의 끝에 내가 있다. 인연이 나를 소름돋게 한다.
온종일 마을을 산책해도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150호가 넘는 큰 마을이지만 구멍가게도 하난 없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중산간 마을 삼달리의 옛 초등학교 터, 그 안에 온종일 갇혀 지내지만 건강할때 느겨보지 못한 평온한 날들의 연속이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집작도 내겐 허용되지 않는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이기에 아주 작은 욕심도 내겐 허용되지 않는다. 집착과 욕심에서 자유로워진 나는 바람을 안고 자유롭게 떠돌던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안에 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그 사진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삶을 여한없이 보고 느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저자 서문 (시작을 위한 이야기) 중에서
千祥炳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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