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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by 발비(發飛) 2005. 6. 1.

방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도 치던데... 쫙쫙 내렸으면 좋겠다.

문을 닫으라는 말씀을 참으시던 사장님께서 비온다고 빨리 문을 닫으라고 하신다.

비내리는 소리도 좋은데... 그걸 못 듣게 하다니...

 

 

-비와 화분-

 

비가 오면 난 항상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 뒤에는 화분이 4개가 있다.

다른 날은 화분이 생각나지 않는다 . 거추장스럽다.

사무실에서의 화분은 나를 기분좋게 하기보다는 거둬줘야하는 대상이다.

물을 안 주면 금방 시들하고...

물을 주면 팔팔하고.. 정말 티가 가장 잘 나는 것들이다.

나의 게으름에 가장 확실한 흔적을 남기는 애들이다.

항상 귀찮기만 하다가,

비가 내리면 난 영락없이 뒤를 돌아다 본다. 불쌍해서...

화분이라는 것은 항상 실내에 있다.

아무리 공기에 오염된 비라지만, 내가 주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비교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비가 오는 날이면 더 안타깝다.

마치 난화분이 팔을 길게 뻗어 창밖으로 손이라고 내밀고 싶어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은 우리 화분들이 물을 마음껏 먹는 날이 된다.

비내리는 날은 항상 물을 듬뿍 준다.

아주 오래 준다. 수돗물을 조금만 틀어놓고 한 참을 앉아서 물을 준다.

비가 내리는 걸 화분들도 알 것이다.

화분들이 천천히 싸리 걸리지 않고 천천히 물을 마실 수 있는 날은 비내리는 날이니까...

화분은 알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을 알 것이다.

 

 

-비의 냄새-

 

비가 많이 내렸으면 한다.

비내리는 날에는

아스팔트며 시멘트가 젖는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이불을 햇빛에 말리는 냄새와 똑같다.

아스팔트나 시멘트에 처음 비가 내리면 얉은 소리와 함께 올라오는  냄새

그 냄새는 햇빛 쨍쨍한 날 이불을 말리고 걷을 때 솜에 밴 냄새와 같다.

분명 햇빛냄새일 것이다.

시멘트 아스팔트 사이에 끼어있던 햇빛들이 제자리를 잃고 모두 기어나오는 냄새.

이불솜 속에 스며들은 햇빛냄새.

해가 쨍쨍한 날에는 이불에서 햇빛냄새를 맡을 수 있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땅에서 햇빛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냄새가 좋다.

하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딱 그 때 냄새를 맡아야 한다.

햇빛은 비내리는 날에는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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