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이탄] 옮겨 앉는 새

by 발비(發飛) 2005. 5. 9.

옮겨 앉지 않는 새

            

 이탄

 


우리 여름은 항상 푸르고
새들은 그 안에 가득하다.

새가 없던 나뭇가지 위에
새가 와서 앉고,
새가 와서 앉던 자리에도 새가 와서 앉는다.

한 마리 새가 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한 나무가 다할 때까지 앉아 있는 새를
이따금 마음 속에서 본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앉지 않는 한 마리의 새.
보였다 보였다 하는 새.

그 새는 이미 나뭇잎이 되어 있는 것일까.
그 새는 이미 나뭇가지일까.
그 새는 나의 언어(言語)를 모이로
아침 해를 맞으며 산다.
옮겨 앉지 않는 새가
고독의 문(門)에서 나를 보고 있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0) 2005.05.09
빈 집에 대한 시  (0) 2005.05.09
[정호승] 쓰레기통처럼  (0) 2005.05.09
[이원] 몸 밖에서 몸 안으로  (0) 2005.05.09
[서정주] 바다  (0) 2005.05.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