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 첫사랑이자 첫 남자친구를 만났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돌이켜봐도 참 이쁜 만남이었다.
그 아이는 요즘 말로 츤데레같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좀 못된 성격이었지만 여자친구인 내가 보기엔 귀여웠다.
나도 비슷한 성격이었다.
우리 둘이 만나게 된 것은 내 별명과 그 아이의 별명이 비슷해서였다.
나는 '악동' 그는 '악돌'
독서실 가벽 너머에서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이 서로 엉켰다.
가벽사이로 쪽지가 넘어왔다.
그 방에 악돌이 있냐고, 우리방 친구들이 악돌이 아니라 '악동'이 있다고,
그런 인연으로 사귀게 되었다.
별명처럼 둘의 성격은 비슷했다.
차가운 성격이지만 장난을 좋아하는,
몇달을 재미있게 지냈다.
분식점도 가고, 수학여행에서 선물도 사서 주고받고,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별 것 없는 것들을 함께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실에서 같은 방을 쓰던 내 친구가 내게 고백을 했다.
자기도 악돌이를 좋아한다고.
나는 그날인가? 그 다음날인가? 악돌이를 만나 그만 만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희미한 사연들이 있은 후 첫사랑, 첫 남자친구로서의 기억만 남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가 가장 환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 첫사랑이 자랑스러워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짧았지만 내게 멋진 시간을 가지게 해 준 악돌이에게 늘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짧은 시간이 없었더라면,
생각만해도 너무 삭막하다.
열일곱 살의 나는 겁이 나서 헤어지자고 한 것 같다.
좀 더 환한 시간을 가졌어도 좋았을텐데, 어렸지만 여러 날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만큼 그 아이를 좋아하는 줄 몰랐던 거지.
나는 그와 만나면서 악돌이를 떠올린다.
짧고 어쭙잖은 만남이 긴 삶에서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그 만남이 짧아서 얼마나 아쉬운지.
지나버린 첫사랑 판타지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그런 걸 어째.
여전히 관계의 지속을 꿈꾼다.
그는 좋은 사람이고,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싶다.
남녀이던, 베스트프렌드이던, 저스트프렌드이던 누군가 좋은 사람이라면 함께하는 것이 중요한 거지,
못 만나는 사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남녀가 하는 일들이 어색하다면 친구가 되면 되지.
물론 그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그러고보니 지금 나는
그때보다 훨씬 복잡하고, 깊고, 예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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